지난달 28일 서울 성수동 산돌 사옥에서 만난 석금호 의장은 "클라우드 폰트 구독 모델로 동남아 일본 등 해외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이게 제가 1984년 일본에서 들여온 한글 조판기입니다. 이제 ‘폰트 독립’은 이뤘으니, 클라우드로 일본을 포함한 해외 폰트 시장을 공략하려 합니다.”

지난달 2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산돌 본사에서 만난 석금호(67) 의장은 폰트의 디지털 전환 과정을 설명하며 이같이 말했다. 산돌은 그래픽 디자이너인 석 의장이 1984년 대학로 작은 골방에서 창업한 국내 최초 폰트 회사다. 원래 CD에 폰트 파일을 담아 팔다, ‘클라우드 구독’ 방식으로 전환에 성공하며 디지털 기업으로 거듭났다. 석 의장은 “폰트를 스트리밍 방식으로 쓰는 방식이 자리 잡자 정체돼 있던 매출이 최근 2년간 연평균 29% 뛰었다”고 했다.

이를 바탕으로 지난 10월엔 코스닥 상장에도 성공했다. 증권가에서는 산돌이 올해 전년 대비 83% 오른 매출 220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예상 영업이익률은 45%에 달한다.

석 의장은 “클라우드 전환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기본 서체인 ‘맑은 고딕’, 애플 기본 서체 ‘산돌고딕네오’, 구글 ‘본고딕’ ‘본명조’와 같은 인기 폰트를 모두 개발했지만 불법 복제가 워낙 판을 쳤기 때문이다. CD에 담아 팔던 폰트 파일을 복제, 유포하는 이들과 수십년간 씨름해야 했다. 석 의장은 “단속과 공포로는 비즈니스 모델을 이어갈 수 없다고 봤다”고 했다.

2018년부터 산돌은 폰트를 마치 음악 감상하는 것처럼 ‘스트리밍 구독 플랫폼’ 방식으로 바꿨다. PC나 스마트폰에 깔린 앱을 실행하면, 2만7000종의 폰트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2020년에는 20단계에 달하던 폰트 사용 범위를 통폐합해 월 9900원(개인 기준) 또는 연 99만원(기업)이면 폰트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도록 했다. 석 의장은 “암호화, 복호화 기술을 적용해 저작권 걱정 없이 폰트를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산돌의 다음 목표는 해외 진출이다. 그는 “특히 동남아와 중국은 폰트 저작권 문제가 심각하다”며 “현지 업체들과 제휴해 해외 플랫폼 진출을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또 디지털화가 더딘 일본에 진출해 40년 전 한글 폰트를 수입해야 했던 설움을 떨쳐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경기 불황 속에서도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급성장하는 모바일 폰트 시장과 영상 자막 시장이 주 공략 대상이다. 석 의장은 “지난해 AI 개발 자회사 산돌메타랩을 세워, 카메라로 폰트를 비추면 이를 찾아주는 서비스를 냈다”며 “AI와 블록체인 같은 신기술로 폰트 분야 혁신도 이어나가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