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테크팀이 2022년 테크놀로지(Technology)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올해 테크 업계를 관통하는 단어는 ‘불확실성’이었다.

코로나 때 풀린 유동성 거품이 한꺼번에 꺼지며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고, 주요 빅테크 기업 주가는 폭락했다. 유례없는 대규모 감원이 이어졌다. 지난해 고공 행진한 가상화폐 업계는 루나·테라 사태, 세계 3위 거래소 FTX의 파산 신청, 위믹스 상장폐지 등 잇따른 악재 속에서 차갑게 얼어붙었다. 개미들에게 유독 힘든 한 해였다.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패권 경쟁에 들어가며 자체 생태계 구축을 위한 벽들이 높게 세워졌다. 무려 127시간 넘게 이어진 카카오 먹통 사태는 초연결 사회의 허점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AI(인공지능)와 로봇은 더 똑똑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한층 가까이 다가섰다. 내년은 불확실성을 딛고 일어서는 해가 되길 기원한다. /편집자 주

1. 초연결 사회 허점 드러낸 ‘카카오 먹통’ 사태

지난 10월 15일 사상 초유 ‘카카오 먹통’ 사태로 우리 사회는 일시 정지 상태가 됐다. 카카오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로 5000만명이 사용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부터 택시·송금·결제·웹툰 등 카카오의 서비스 20여 종이 일제히 멈춘 것이다.

/카카오

여파는 컸다. 독과점 기업이 ‘문어발 확장’에 몰두하면서 정작 서비스 안정화는 뒷전이었음이 드러나며, 정부의 반독점 규제가 본격화했다. 유사 사고를 막기 위한 소위 ‘카카오 먹통 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카카오·네이버 같은 플랫폼 사업자도 정부의 관리를 받게 됐다. 전례 없는 무료 서비스 보상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이중화’의 중요성을 온 사회가 알게 됐다.

2. 美·中 반도체 패권 경쟁… 중간에 끼인 한국

올해 세계 주요국은 반도체를 ‘무기’로 삼으며, 대대적 공급망 재정비에 나섰다. 특히 미국은 중국에 18나노미터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로직 반도체용 장비 수출을 통제하며 본격 견제에 나섰다. 한국에는 이른바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동참을 요구했다. ‘미국의 기술’과 ‘중국의 시장’을 모두 놓치기 어려운 한국은 진퇴양난에 직면해 있다.

미국, 유럽(EU) 등 세계 주요국은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도체로 먹고사는 한국의 반도체특별법은 여전히 표류 중이다.

3. FTX 파산, 위믹스 상폐… 신뢰 잃은 가상화폐 업계

올해 가상화폐 업계는 ‘코인판 리먼 브러더스 사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사다난했다. 지난 5월 국내 스타트업 테라폼랩스가 만든 가상화폐(코인) ‘테라’와 자매 코인 ‘루나’의 가격이 일주일 새 10만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다. 가상화폐 시가총액 10위권에 들었던 코인이 수일 만에 단돈 1원짜리도 안 되는 가치로 떨어진 것이다. 지난달엔 세계 3위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60조원이 넘는 빚을 남기고 파산 보호 절차에 들어가 시장의 불안감은 한층 커졌다. 이달 초 국내 게임 업체 위메이드가 만든 코인 ‘위믹스’가 “발행 물량을 잘못 공시했다”는 이유로 국내 주요 거래소에서 일제히 상장폐지되면서, 가상화폐 업계의 신뢰도는 바닥을 찍었다.

4. 화가부터 연예인까지… AI의 도전은 계속된다

인공지능(AI)은 한층 똑똑해진 모습으로 우리 삶에 녹아들었다. 채팅, 미술, 영상 제작 등 다양한 분야에 AI를 접목한 비즈니스와 서비스가 대거 공개됐다. 세계 최대 AI 연구소 오픈AI가 챗봇형 AI ‘챗GPT’를 공개하자, 뉴욕타임스는 “경외감이 들 정도”라고 평가했다. AI가 만든 ‘버추얼 휴먼(가상 인간)’은 올해 광고, 연예계를 뒤흔들었다. 원하는 화풍과 주제를 입력하면 알아서 그림을 쓱쓱 그려내는 AI 화가, 생전 사진·영상을 바탕으로 고인을 가상 인간으로 되살려주는 서비스 등 다양한 AI 가 등장해 기술 발전을 실감하게 했다.

디지털 휴먼 '로지'. /로지 인스타그램

5. 삼성, 3나노 세계 첫 양산… 파운드리 추격 본격화

삼성전자는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3나노 공정 기반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양산에 성공했다. 파운드리 ‘후발 주자’인 삼성이 기술력 면에선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있음을 과시하며, 압도적 1위인 대만 TSMC를 추격할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다만 삼성전자는 35년째 파운드리 사업에 주력해온 TSMC 대비 수율(생산품 중 정상품 비율)과 고객 신뢰도, 생산 능력 등의 측면에서 아직 뒤처져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30년 파운드리 세계 1위’ 목표를 내건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과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대대적 투자를 단행하며 추격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6. 毒이 된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

‘천재 사업가’ 소리를 들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가 지난 10월 소셜미디어 트위터 인수 이후 점차 늪에 빠지고 있다. 직원 절반 이상을 해고하고, 즉흥적으로 의사 결정을 했다가 역풍을 맞고 번복하는 등 악수(惡手)를 거듭하고 있다. 광고주들은 대거 이탈했고, 본업에 충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테슬라 주가마저 30% 가까이 추락했다. ‘트위터 대표직에서 물러날까요?’란 돌발 투표에는 57.5%가 찬성했다. 거대 소셜미디어까지 손에 쥐려던 세계 최고 부자의 시도는 철저히 실패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7. ‘L의 공포’ 덮쳤다… 대규모 감원 나선 테크 업계

글로벌 테크 업계엔 날카로운 감원(減員) 바람이 불었다. 코로나 호황 때 대규모 채용을 단행했던 기업들이 경기 침체를 앞두고 선제적으로 몸집을 줄여 혹독한 겨울나기 채비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L(Layoff·해고)의 공포’다.

테크, 자동차, 금융, 유통 등 전 업종에서 동시다발로 감원이 벌어졌지만 가장 해고가 많은 곳은 테크 업계였다. 아마존은 역대 최대 규모인 1만명을 정리 해고하기 시작했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 역시 올 상반기에만 1만3000여 명을 감축했다.

해고가 쉽지 않은 국내 기업들도 내년도 경제 위기를 앞두고 희망 퇴직 대상자를 잇따라 모집하고 있다.

8. 인간 닮은 로봇 ‘휴머노이드’ 시대가 온다

인간 외형을 닮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여럿 등장하며, 로봇과 공존하는 시대가 한층 가까워졌음을 알렸다. 테슬라가 지난 9월 공개한 ‘옵티머스’는 무게 약 9kg의 가방을 들 수 있고 작은 부품도 정확하게 집을 능력을 갖췄다. 종전 로봇은 뇌, 지능이 없지만 이 로봇은 인간의 명령을 알아듣고, 스스로 판단·행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테슬라

이보다 한 달 앞선 8월에는 중국 샤오미가 휴머노이드 ‘사이버원’을 공개했다. 사이버원은 발표회장 무대에서 꽃을 전달하고 쿵후 동작을 취하기도 했다. 사이버원은 인간 감정 45가지를 식별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이 샤오미의 설명이다.

9. 사용자 확대 지지부진… 힘 빠진 메타버스

코로나 특수를 톡톡히 누렸던 메타버스(3차원 가상 세계) 트렌드는 올해 차갑게 식었다. 지난해 사명까지 ‘메타’로 바꾸고 100억달러(약 13조원) 이상을 쏟아부은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사용자 확대는 지지부진하고 손실은 계속 늘고 있다. 메타버스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머리에 뒤집어쓰는 VR(가상 현실) 기기는 콘텐츠가 부족하고 장시간 쓰기에 불편하다는 문제를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메타버스가 대세가 되리란 장밋빛 전망은 꾸준하다. 시티그룹은 2030년에 메타버스 사용자 수가 50억명에 이르고, 전체 시장 규모도 최대 13조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내년 삼성전자, 애플 등 주요 전자 업체들이 뛰어들면 시장이 급성장할 것인지도 관전 포인트다.

10. 테크 업계 그린 열풍… ‘RE100’ 잇따라 동참

올해 테크 기업들은 유난히 ‘초록빛’이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일종의 선언적 의미를 넘어 기업 경영의 핵심 지표로 자리 잡은 원년이었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도 지난 9월 ‘신환경 경영 전략’을 발표하면서, 경영의 패러다임을 ‘친환경 경영’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조달하자는 ‘RE100′ 캠페인에도 국내외 기업들의 동참이 잇따랐다. 다만 경기 불황 앞에서 ESG는 후순위가 되는 경우가 잦았고, 부족한 국내 재생에너지 인프라 여건 때문에 RE100 실질적 이행이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