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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토리와 테크놀로지는 뗄레야 뗄 수 없습니다. 테크놀러지 전문 기자가 현대 스토리 비즈니스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짚어드립니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습니다. 1964년 기구가 만들어진 이래,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으로 지위가 바뀐 것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2021년 오징어 게임 46일 전 세계 연속 1위, BTS 빌보드 차트 7주 연속 1위 등 ‘K- 소프트파워’ 확대는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증거들입니다.

세계를 휩쓰는 'K 컬쳐'와 'K콘텐츠'의 위력. 음악·영화·드라마·스포츠 등에서 한국인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그래픽=백형선

기자는 K-엔터테인먼트 설계자들이 사활을 건 베팅으로 판을 키우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감탄했습니다. 실력(콘텐츠 제작 능력과 유통 능력)만 갖춘 것이 아니라 자본도 잘 다룬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습니다. 오늘 <아하! 스토리>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이끄는 카카오, 네이버, 하이브, CJ가 ‘판돈’을 키웠던 결정적 순간들을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들은 월스트리트나 할리우드 뺨치는 기업 구조 개편이나 자금 유치, 인수합병을 서슴지 않고 해냈는데, 이걸 알면 K엔터테인먼트의 구도를 읽는 데 도움이 됩니다. 최근 불거진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을 둘러싼 카카오・네이버・하이브・CJ의 각기 다른 계산법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네이버・하이브・CJ는 시가총액 기준으로 ‘엔터테인먼트 코리아’를 이끄는 4대 천왕입니다. 카카오의 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의 웹툰엔터테인먼트 몸값은 최소 10조원 이상입니다. 방탄소년단(BTS)을 세상에 내놓은 하이브의 기업 가치도 8조원이 넘습니다. CJ 그룹의 계열사인 CJ ENM과 스튜디오드래곤의 시가총액을 합하면 5조원에 이릅니다.

그래픽=정다운

◇ 판을 키운 결정적인 순간

① 카카오 - 2021년 3월

‘사내맞선’ 안효섭X김세정, 인기 웹툰의 실사화 스페셜 작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크로스픽쳐스 제공

최근 SM엔터테인먼트 지분 9.05% 인수해 논란의 중심에 선 카카오의 결정적 순간부터 살펴봅시다. 카카오의 웹툰·웹소설 서비스 자회사인 카카오페이지와 영상·매니지먼트 자회사 카카오M이 전격 합병해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출범한 2021년 3월이 결정적 순간입니다. 같은 해 9월 카카오에서 분사한 음원 스트리밍 회사 멜론까지 더해져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단숨에 종합 엔터테인먼트 업계 매출 3위로 올라섭니다.

2019년만 해도 카카오페이지는 단독 상장을 추진했습니다. 기업 추정 가치도 1조~4조 원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카카오는 더 큰 그림을 그립니다. 카카오 산하 엔터테인먼트 계열사들을 합쳐 덩치를 키우고 나스닥에 상장하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카카오는 웹툰·웹소설을 드라마와 음반(OST)으로 제작하고 해외 시장에 동시다발적으로 파는 회사를 만든다면, 기업 가치가 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2021년은 낮은 금리와 팬데믹으로 디지털 플랫폼 회사의 기대 가치가 끝없이 오르던 때였습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북미 웹툰업체 타파스엔터테인먼트와 웹소설 업체 래디쉬 등을 인수하는 데 1조 원을 썼습니다. 판을 키운 카카오 입장에서 SM엔터테인먼트의 인수는 ‘빅 픽처’의 마지막 퍼즐을 맞추는 일과도 같습니다. 카카오가 SM엔터테인먼트 지분 인수에 발빠르게 나선 것은 2021년 3월부터 그려놓은 밑그림에 따른 것입니다.

② 네이버 - 2020년 8월

네이버웹툰 제공

이제 네이버의 결정적 순간을 꼽아보겠습니다. 네이버가 웹툰 사업의 지배 구조를 미국 웹툰엔터테인먼트(Webtoon Entertainment) 중심으로 재편한 2020년 8월이 떠오릅니다.

네이버가 2017년 5월 웹툰 사업을 물적분할해 네이버웹툰으로 독립시킬 때만 해도 네이버웹툰의 목표는 국내 상장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 8월 네이버는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판을 키웁니다. 본사를 한국이 아닌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옮기고 한국의 네이버웹툰이 미국 법인인 웹툰엔터테인먼트 산하로 들어갑니다. 네이버웹툰이 웹툰엔터테인먼트의 한국 지사(웹툰엔터테인먼트코리아)가 된 셈입니다. 2022년 네이버는 미국 웹툰엔터테인먼트에 추가로 약 4000억 원을 투입했습니다.

네이버의 베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021년 5월 북미 웹소설 플랫폼 업체 왓패드를 6억 달러를 들여 사들이고 한국 1위 무협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 시각 특수분야(VFX) 기업 로커스, 일본 전자책 업체 ‘이북 이니셔티브 재팬(eBook Initiative Japan) 등을 잇따라 사들여 지식재산권(IP, 작품) 확보에 뛰어들었습니다.

네이버는 CJ-하이브-YG엔터테인먼트에 이르는 ‘동맹’도 만듭니다. 2017년 YG엔터테인먼트에 1000억원 투자, 2020년 CJ그룹과의 총 6000억원 어치의 지분 교환(CJ 대한통운 3000억원, CJ ENM 1500억원, 스튜디오드래곤 1500억원), 2021년 하이브의 팬덤 플랫폼 위버스컴퍼니에 4119억원 투자를 통해 피(지분)를 나눕니다. 위버스와 네이버의 팬덤 플랫폼 브이라이브의 통합 작업도 마무리 돼 위버스의 입지는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SM 경영권 분쟁을 두고 하이브와 네이버의 이해 관계가 거의 같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도 두 회사가 지분 교환을 통해 돈독해졌기 때문입니다.

③ 하이브 - 2021년 4월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왼쪽), 저스틴 비버(오른쪽)./인스타그램

2021년 4월 2월 하이브는 자회사 빅히트아메리카를 통해 미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이타카홀딩스의 지분 100%를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아리아나 그란데, 저스틴 비버 등 대형 스타들이 이타가홀딩스 소속입니다. 인수 규모는 10억 5천만 달러(약 1조 1860억원)로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한국 기업이 해외 레이블을 인수한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퀀텀 점프(비약)’을 도모한 2021년 4월이 하이브의 결정적 순간입니다.

여러 기획사를 거느리는 멀티 레이블 체제는 하이브가 BTS 의존도를 낮추는 전략이기도 합니다. 하이브가 2020년 10월 상장할 당시 BTS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8%에 달했지만, 2022년 1분기에는 50~60%로 낮아졌습니다. 최근 하이브가 이수만의 지분(14.8%)을 사들이며 SM엔터테인먼트 인수에 나선 것도 멀티 레이블 전략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④ CJ ENM - 2016년 4월

CJ의 결정적인 순간을 되짚어 보겠습니다. 종합 케이블 방송 회사 CJ ENM에서 드라마사업본부를 물적분할해 스튜디오드래곤을 설립한 2016년 5월을 꼽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95년 케이블방송에 진출한 후 CJ가 엔터테인먼트 바닥에서 처절하게 깨지며 배운 노하우들이 스튜디오드래곤의 설립과 운영에 녹아 있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 설립과 동시에 화담앤픽쳐스, 문화창고, KPJ 등 드라마 제작사 3곳은 잇따라 인수했습니다. 문화창고 소속인 배우 전지현이 스튜디오드래곤의 소속 연예인이 되는 등 우수한 실력의 작가, 연출자, 기획자를 품은 것입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이 주요 작가에게 지분을 제공한 것은 ‘신의 한 수’였습니다. CJ ENM이 오랫동안 드라마를 제작하면서 확인한 것 중 하나가 실력 있는 작가가 흥행을 좌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분 관계를 바탕으로 흥행 작가를 영입하려는 경쟁 제작사들을 따돌리고 작가들과 장기적으로 협업하는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2017년 기준으로도 작가들이 보유한 스튜디오드래곤 지분 가치는 수억~수십억 원에 달했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 드라마의 흥행은 ‘이유있는 돌풍’이었습니다. 김은숙 작가가 쓴 드라마에 전지현이 주연으로 출연하면 흥행 보증 수표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스튜디오드래곤 제공

보통 드라마 제작사들은 연간 1~2 편의 드라마를 제작하기 어렵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달랐습니다. 2017년 ‘비밀의 숲’ ' 듀얼’ 등 8편의 드라마가 나왔습니다. ‘도깨비’를 집필한 김은숙 작가,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대장금’ ‘육룡이 나르샤’ 등을 쓴 김영현·박상연 작가들이 스튜디오드래곤에 합류하면서 다작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스튜디오드래곤의 등장은 드라마 제작의 전문화, 대형화 전략이 본격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때마침 미국에서는 넷플릭스가 스트리밍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아시아에서 스튜디오드래곤은 넷플릭스 최적의 파트너였습니다. 2018년 스튜디오드래곤이 넷플릭스에 ‘미스터 선샤인’을 공급한 후 넷플릭스가 스튜디오드래곤에 지분까지 투자했습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모기업 CJ ENM의 시가총액도 앞질렀습니다. 스튜디오 체제에 자신감이 붙은 CJ ENM은 2021년 11월 19일 영화 ‘라라랜드’를 만든 미국 제작사 엔데버콘텐트(현 피프스시즌)를 9800억원에 인수하는 또다른 승부도 던졌습니다.

◇ 북미 시장에 던진 승부수…과제도 많다

2020~2021년 한국 엔터테인먼트 강호들의 행보는 결국 세계 시장, 특히 가장 큰 북미 시장을 향한 경영 전략의 과감한 재설계였습니다. 묘하게도 유엔무역개발회의에서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하던 시점과 겹칩니다.

팬데믹 시기 전 세계는 K-콘텐츠의 역동성과 세련됨에 크게 매료됐습니다. 스트리밍 네트워크(유튜브, 넷플릭스, 스포티파이)를 타고 ‘K의 대발견’이 이뤄진 것이지요. 네이버와 카카오는 나스닥 상장으로, 하이브와 CJ는 미국의 톱 기획사와 제작사 인수로 글로벌 전략을 업그레이드하며 야망을 드러냈습니다.

풀어야 할 난제는 많습니다. 미국 웹툰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 네이버 내부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 웹툰 이용자의 26%가 결제로 이어지지만, 미국 웹툰 이용자의 결제 비율은 4%에 그칩니다. 네이버의 미국 웹툰 비즈니스는 연간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하나증권은 CJ ENM의 목표 주가를 낮췃습니다. CJ ENM 산하 계열사인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회사 티빙과 미국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 피프스시즌의 적자 규모가 이른 시일 내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지난해 티빙은 약 1100억 원, 피프티시즌은 약 400억 원의 적자를 냈습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공격적인 인수합병 탓에 재무 부담이 커졌습니다. 부채총액이 2조원에 육박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1조2000억 원의 해외 투자를 유치한 것은 의미가 큽니다. 글로벌 투자사들도 K-콘텐츠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준구 웹툰엔터테인먼트 대표도 “한국에서도 웹툰이 주류가 되기까지 10년이 걸렸다”면서 “미국 시장에서의 성공은 수순”이라고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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