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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금요일(Bloody Friday)’

실리콘밸리는 물론 전세계 테크 업계를 놀라게 한 지난 1월20일 구글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두고 나온 말입니다. 이날 하루 1만2000명, 구글 직원의 6%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1998년 스탠퍼드대 박사 과정 학생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가 공동 창업한 구글은 급성장을 거듭하며 인터넷 제국이 된 ‘성공의 표본’이었고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습니다. 차고에서 단 두 명이 세운 회사는 25년 만에 18만7000명까지 늘었습니다. 해고와 고용이 세계에서 가장 자유로운 실리콘밸리지만 구글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의 무풍지대였습니다. 2009년 수백 명의 판매 직원을 해고한 것이 유일한 감축 사례로 남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오픈AI 챗GPT의 등장과 갈수록 거세지는 반독점 규제 움직임은 이 거대 인터넷 공룡이 영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이번 구조조정도 위기감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

구글은 항상 성장과 혁신의 비결로 ‘인재’를 꼽아 왔습니다. 구글의 이전 행보도 이를 명확하게 보여줬습니다. 이익이 남으면 전세계 다른 기업들처럼 주주들에게 대규모 배당을 하는 대신 직원들에게 아낌없이 쏟아 부었습니다. 높은 연봉 인상률은 물론 대규모 푸드코트 이상의 시설에서 공짜 음식을 제공했고 선물과 인센티브도 시시때때로 살포했습니다. 최고의 인재라면 구글을 택하고, 그들이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일하면서 주가가 높아진다. 이게 구글의 주주환원 정책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을 일시에 자른 구글의 구조조정이 충격을 준 이유입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구글 답지 않은 구조조정’이라고 했습니다. 구글도 얼마든지 인재제일 원칙을 버릴 수 있다는 걸 알려줬다는 겁니다.

미국 구글은 구내식당에서 직원 건강을 위한 '구글 푸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구글

대규모 구조조정은 항상 뒷이야기를 낳습니다. 구조조정이 ‘각 부서에서 일괄적으로 몇 명씩 자른다’ 처럼 간단하게 이뤄지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죠. 구글도 필요가 없거나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한 부문을 통째로 날리거나 대폭 축소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구글 복지를 대표하던 사내 마사지사 27명도 이번 해고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직원 복지의 대명사’를 버릴 정도로 구글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거죠. 특히 업계에서 주목한 것은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막내 자회사인 로봇 업체 ‘에브리데이 로봇(Everyday Robots)’ 사업부 폐지였습니다. 구조조정을 당한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고 구글이 끊임없이 미래라고 주장해온 사업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거죠.

◇구글X는 구글 영생 프로젝트

/에브리데이 로봇 구글 자회사 에브리데이 로봇의 로봇. 로봇팔로 쓰레기를 분류하고 옮긴다.

에브리데이 로봇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글 X’의 개념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구글X는 이른바 ‘문샷(달을 쏘다)’으로 불리는 구글의 미래 혁신 프로젝트입니다. 구글 공동창업자 브린은 구글X에 대해 ‘먼 미래에 핵심 비즈니스가 되길 기대하는 아주 엉뚱한 프로젝트’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X는 방정식의 미지수를 뜻합니다. 구글 창업자들은 구글이 검색 엔진 위에 세워진 회사이지만 검색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검색과 인터넷 광고로 막대한 돈을 버는 동안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개발해 검색 엔진 이후를 대비하겠다는 것이 구글X의 목표인 셈이죠. 다시 말해 구글이라는 회사의 영생 또는 생명연장 프로젝트입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구글X에서 큰 회사 가운데 가장 최근에 분사한 회사입니다. 2021년 11월19일 분사가 공식화됐습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10년 전 구글이 로봇공학 기업을 대거 인수한 뒤 연구 분야를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구글이 이 당시 사들인 회사는 알려진 것만 8곳 이상인데 이 중에는 현재 현대차 핵심 계열사인 보스턴 다이내믹스도 있었습니다. 휴머노이드(두발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와 현대차 행사마다 등장하는 로봇개 ‘스폿’을 만든 회사이죠.

브린과 페이지, 두 구글 공동창업자가 로봇에 관심을 가진 것은 구글이 강점을 갖고 있는 머신러닝(기계학습) 소프트웨어가 로봇 공학의 미래를 바꿀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술전문 매체 와이어드는 “특히 페이지는 소비자들이 직접 필요성을 느낄 수 있는 로봇 개발을 원했다”고 했습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이 시장을 명확하게 타깃팅한 회사였습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의 핵심 개발 목표가 집과 사무실에서 사람과 어울려 일하는 ‘협동로봇(collaborative robot)’이었습니다.

◇쓰레기 더미에서 탄생한 로봇

/에브리데이 로봇 구글 사옥에서 에브리데이 로봇의 로봇이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사람을 닮은 로봇이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효율적으로 보조하거나 대체하는 로봇을 개발합니다. 어떤 로봇이 그런 로봇일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ABB, 쿠카 로보틱스 같은 산업용 로봇 업체들이 보여줬습니다. 물건을 집어서 들 수 있고, 옮기거나 돌릴 수 있어야 합니다. 팔과 손(집게)이 기본 사양이라는 겁니다. 에브리데이 로봇도 비슷합니다. 바퀴로 움직이며 팔과 튼튼한 집게 손이 있고 납작한 머리 안에는 3차원(3D) 카메라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7년 전 에브리데이 로봇이 처음 진행한 실험은 이런 로봇에게 어떤 것을 가르칠 수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었습니다. 우선 구글X 빌딩 2층에 팔 농장(the arm farm)에 14개의 로봇 팔을 설치한 뒤 펜, 봉제 인형, 페인트 브러시 같은 여러가지 물건을 구분하고 잡도록 가르쳤습니다.

기계학습 코드를 끊임없이 바꾼 끝에 2개월 동안 80만 번의 물건 잡기 시도를 했고 80% 이상 성공했습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성공률을 더 끌어올리기 위해 딥러닝(심층학습) 알고리즘을 추가했습니다. 알파고부터 최근 각광받는 챗GPT까지 현재 인공지능(AI)의 토대가 되는 기술입니다. 팔 농장에서 실제 로봇을 구동하며 얻은 정보에 시뮬레이션 실험에서 얻어낸 방대한 가상 데이터를 결합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새 알고리즘 도입 하루 만에 성공률이 90%로 올랐습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2020년 로봇을 실전에 투입합니다. 분야는 ‘쓰레기 분류’였습니다. 구글 사옥 곳곳에는 ‘캔/병, 종이, 일반 쓰레기’로 구분된 세 가지 색상의 쓰레기통이 놓여 있습니다. 다들 이 앞에서 망설인 경험이 있을 겁니다. 구글에 따르면 직원들은 평균적으로 20%의 쓰레기를 잘못 투입합니다. 에브리데이 로봇은 이 앞에서 세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면서 잘못 분류된 쓰레기를 제대로 옮겨 담습니다. 로봇이 오판독할 가능성은 3.5%에 불과합니다. 로봇은 쓰레기를 더 잘 보기 위해 쓰레기통 안을 휘젓거나, 쓰레기를 집어 들어 각도를 바꿔가며 살펴보기도 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면 재택 근무에 돌입한 뒤에는 에브리데이 로봇의 로봇 100여대가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극소수의 출근자들과 함께 일하기도 했습니다. 회의실 내부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거나 식당에 남겨진 쓰레기를 수거하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기술적 진보 이뤘는데 상용 단계에서 폐지

/에브리데이 로봇 에브리데이 로봇의 로봇이 "배가 고프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감자칩을 가져다 주고 있다.

지난해 에브리데이 로봇은 새로운 기술도 선보였습니다. 챗GPT 같은 대규모 언어 모델을 에브리데이 로봇의 시스템에 통합하자 앞에 있는 사람이 ‘배가 고프다’라고 말하면 감자칩을 가져다 주는 것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애플의 ‘시리’나 아마존 ‘알렉사’ 같은 AI비서에 손발을 달아준 셈이죠. 애브리데이 로봇은 물건을 어떻게 집으면 가장 효율적인지 알기 때문에 손의 모양만 바꾸면 공장이나 식당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습니다. 손으로 누르지 않아도 말을 알아 들으니 배달이나 서빙로봇으로도 제격입니다.

하지만 구글은 1월20일의 대해고와 함께 에브리데이 로봇 사업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습니다. 와이어드에 따르면 구글 경영진은 에브리데이 로봇이 언젠가 유용할 수 있다는 점에는 공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당 수만 달러의 제작 가격을 들인 로봇에 쓰레기 분류 같은 일을 시키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비판적인 의견이 더 많았다는 것이죠. 200명의 우수한 로봇·AI 인력을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습니다. 챗GPT 같은 직접적인 경쟁자가 나타난 상황에서 잘할 수 있는 분야에나 집중하자는 겁니다.

구글은 에브리데이 로봇 사업부를 구글 연구 조직 내에 분산배치하고 일부 인력은 정리해고했습니다. 당분간 구글 사옥에 다시 이 로봇이 돌아다니는 일은 없어진 겁니다. 구글을 잘 아는 사람들은 에브리데이 로봇 사업 철수에서 데자뷔를 느낍니다. 거창한 비전과 신비로운 컨셉으로 포장됐던 구글의 수많은 X프로젝트들이 걸었던 길을 봐왔기 때문입니다.

구글 자회사 웨이모의 자율주행차. /웨이모

구글X는 사실 미래에 투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의 기록집에 가깝습니다. ‘구글이 이런걸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 언론과 전문가들이 앞다퉈 찬양하지만 몇 년 뒤에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됩니다. 이 과정을 뛰어넘어 살아 남은 사업은 극소수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자율주행 업체 ‘웨이모(Waymo)’입니다. 웨이모는 애리조나와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에서 실제 운전자 없는 차량의 상용화까지 성공하며 ‘모빌리티의 미래’로 불렸습니다. 당초 2020년 전면 상용화를 하겠다는 목표는 차일피일 미뤄졌고, 점차 비관적인 전망이 많아지고 있지만 어쨌든 웨이모는 살아 있습니다.

◇평범해진 생명공학 회사 ‘베릴리’

포스텍 한세광 교수가 개발한 스마트 콘택트렌즈. 구글 베릴리는 같은 개념의 렌즈를 개발하다가 포기했다.

아직 살아 있지만 위험해지고 있는 업체로는 베릴리(Verily)가 있습니다. 구글X에 있다가 2015년 자회사로 분사한 베릴리는 독특하고 혁신적인 발상으로 생명·바이오 분야에 접근했습니다. 베릴리가 2016년 시작한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은 1만명의 사람들에게 스마트워치를 제공하고 이들의 생활을 1년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사람들의 생활과 식습관을 빠짐없이 추적하면서 질병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답을 얻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릴리가 내놓은 제품 가운데 가장 화제를 모은 것은 눈에 착용하면 당뇨 환자의 상태를 모니터링해주고 필요 시 약물까지 전달해주는 ‘스마트 콘택트렌즈’ 였습니다. 질병을 감지하는 나노입자, 피를 뽑지 않아도 항상 혈당을 보여주는 모니터, 낙상을 감지해주는 스마트 신발 등 다양한 의료기기와 제품도 계속해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베이스라인은 개인정보 보호 논란에 휩싸였고 각종 의료기기도 정확도나 비용 문제로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 콘택트렌즈 역시 배터리와 안전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1월 구조조정 당시 베릴리 직원 15%가 해고됐고 의료 기기 개발은 전면 중단했습니다. 베릴리 최고경영자(CEO) 스티븐 질레트는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베릴리는 더 이상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하지 않고 정밀 의료 지원만을 목표로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독특한 접근과 아이디어로 바이오 시장에서 화제를 모았던 베릴리가 그냥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한 셈이죠.

◇열기구 인터넷, 비행 풍력발전소… 구글의 흑역사

구글의 프로젝트 룬

구글X 단계에서 사라진 기술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IT업계에서는 구글에서 기술이나 사업 하나가 사라질 때마다 ‘구글 묘지(Google Graveyard)에 합류했다’는 표현을 씁니다. 잡지 슬레이트(Slate)에는 구글 묘지가 업데이트 되는 페이지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프로젝트 룬(Project Loon)도 구글 묘지에 묘비가 있습니다. 거대한 풍선(열기구)을 지구 저궤도에 띄워 전세계를 인터넷으로 연결하겠다는 발상이었습니다. 2010년부터 수백 대의 열기구를 띄웠고 실제 실험에서 일부 성과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무인 열기구는 조종이 힘들 뿐더러 성층권의 낮은 온도를 견디지 못하며 잦은 고장을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 100일 이상 떠있는 열기구를 만들겠다는 구글의 목표는 50일 정도에서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2021년 구글은 룬을 공식 폐기했습니다. 더 이상 사업 추진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창업자의 우주 인터넷 ‘스타링크’였습니다.

/구글X 하늘에 연(비행기)을 띄워 풍력발전을 하는 구글X의 프로젝트.

하늘을 나는 풍력 발전기를 만들려던 마카니(Makani)도 구글X의 흑역사입니다. 이른바 ‘에너지 연(Energy Kite)’로 불리는 거대한 풍력 발전기를 공중에 띄워 데이터센터 운영에 필요한 막대한 전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구글은 높은 고도의 강력한 풍압을 이용해 기존 풍력 터빈보다 비용을 10%로 줄이면서 발전량은 50% 늘이는 목표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연은 바다에 떨어지거나 지상에 추락하는 등 끊임없는 문제를 일으켰고 결국 2020년 2월 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됐습니다. 회사측은 “기술의 진보는 이뤘지만, 상용화까지의 길이 생각보다 길고 위험했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직도 개발 중인 ‘구글 글래스’

지난해 열린 구글 개발자 행사 영상의 한 장면. 한 여성이 구글의 AR 스마트 글래스를 끼고, 상대방과 대화하고 있다. /구글 I/O 2022 동영상 캡처

프로젝트 아우라(Project Aura). 낯선 이름이지만 구글X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결과물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겁니다. 바로 증강현실(AR) 안경 ‘구글 글래스’입니다. 안경으로 25인치 고화질 화면을 보여주고 골전도 이어폰과 카메라를 갖춘 구글 글래스는 발표 당시만 해도 ‘IT 기기의 미래’로 각광 받았습니다. 2014년에는 이례적으로 정식 완성도 되지 않은 기기를 개발자용으로 고가에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시 초기부터 구글 글래스는 수많은 논란을 낳았습니다. 배터리와 발열 등 기술과 제품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사생활 보호, 해킹에 대한 경고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구글은 계속적으로 제품을 업데이트하려 노력했지만 대중의 눈높이를 좀처럼 넘지 못했고 2015년 이후 신제품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구글이 구글 글래스를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해 구글 개발자 대회(구글 IO)에서 공개된 프로토타입의 구글 글래스는 실시간으로 번역된 언어를 눈 앞에 보여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대중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프로젝트 포그혼(Foghorn), 프로젝트 말타(Malta)도 있습니다. 바닷물에서 추출한 탄소와 수소를 추출해 새로운 액체연료를 만드는 포그혼, 전기를 소금 배터리에 저장하는 말타 역시 모두 과학적 장벽이 높고 비용 절감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폐지됐습니다. 지상에서 우주를 언제든지 오갈 수 있는 우주 엘리베이터, 차고만 있으면 암을 치료해주는 스마트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도 구글X에서 한때 연구했던 프로젝트들입니다.

◇구글의 철학이 바뀌었다

미래에 투자하고, 황당한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자율주행차, 초음속 전투기, 무인 항공기, 인터넷, 레이더 같은 기술은 모두 묻지마 투자로 유명한 미국 국방부 산하 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나왔습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 붓더라도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환경에서 인류와 전쟁의 역사를 바꾼 제품들이 탄생한 겁니다. 특히 국가가 아닌 일개 기업인 구글이 당장의 이익보다 먼 미래에 투자하는 것은 기존 경영의 상식을 깬 새로운 길의 개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앤디 루빈 전 구글 부사장

하지만 구글의 구글X는 이런 점을 모두 감안해도 지나치게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았습니다. 예를 들어 에브리데이 로봇의 탄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앤디 루빈이 등장합니다. 루빈은 갤럭시 스마트폰의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만든 사람으로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하면서 구글 임원이 됐습니다. 그는 2013년 회사 신사업 발굴을 담당했는데 뚜렷한 전략도 공개하지 않은 채 8곳 이상의 로봇 기업을 무차별적으로 사들였습니다. 그리고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성폭력 문제로 구글을 떠났습니다. 로봇이 미래가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만으로 엄청난 회사 돈을 지출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 당시 인수한 기업들은 10년에 걸쳐 대부분 재매각되거나 사업이 중단 됐습니다.

구글이 잘 나가고 유일무이한 인터넷 제국이었을 때는 이런 투자와 낭비가 큰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업은 없어져도 우수한 인력이 남으니 재배치해서 기존 사업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구글이 구조조정 무풍기업이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구글 투자자와 컨설팅 회사들은 구글에 ‘구글X를 축소하라’며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구글이 구글X와 이미 분사한 웨이모 등 혁신적인 프로젝트에서 입은 손실만 61억달러(약 8조원)입니다. 냉정한 얘기지만, 기업의 존속을 위해서는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인터넷과 IT라는 분야가 승자독식이라는 점을 구글만큼 잘 알고 있는 곳도 없을 겁니다.

인재 제일, 미래 지향, 끊임없는 혁신 같은 구글의 철학도 바뀌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물론 구글X는 여전히 살아있고 많은 프로젝트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중 하나만 성공해도 또다른 제국이 세워질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시간이 무한정하지 않은 것이 걸림돌일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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