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은 지난 10일 생성형 AI 챗봇 ‘바드’에서 한국어와 일본어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영어 이외 언어로는 처음이다. 독일의 AI 번역기 ‘딥엘’도 올 들어 한국어 번역 서비스를 추가하고 오는 8월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유료 번역 서비스 ‘딥엘 프로’를 국내시장에 출시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한국어 사용 인구는 8000만여 명으로 전 세계 언어 가운데 23위에 불과하다. 한국어 사용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AI를 개발하는 기업들이 한국어 지원을 강화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국어 번역이 어렵기 때문에 ‘시험대’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데다가 한국(K) 콘텐츠가 해외에서 인기를 끌면서 한국어 수요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한국어 번역이 AI 시험대

최근 한국을 찾은 딥엘의 야렉 쿠틸로브스키 CEO는 “한국어의 독특한 특징 때문에 한국어 번역 과정이 복잡하다”며 “그래서 번역 서비스 수요가 높다”고 했다. 한국어 어순이 영어나 독일어와 다르고 표현도 미묘한 점이 많기 때문에 사람이든 AI든 한국어를 학습했다고 해도 번역까지 매끄럽게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어는 영어와 달리 어순이 바뀌어도 이해가 되고 의미가 통한다. 예를 들어 영어 문장 “I Like you”를 한국어로는 “나는 당신을 좋아한다”나 “나는 좋아, 당신이”로 표현할 수 있다. 한국어만의 특징도 한국어 번역을 어렵게 한다. 경어와 같은 존칭 표현과 상황과 대상, 문맥에 따른 격식 있는 표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번역의 완성도가 달라진다. “~해요”나 “~합쇼” “~해” 같은 다양한 동사 활용형을 외국어에 적용하는 것도 과제이다.

사용자가 많지도 않고 어려운 한국어를 AI 개발사들이 지원하는 데에는 AI가 한국어 번역이라는 ‘장애물’을 넘을 수 있다면 다른 언어를 학습하고 번역하는 데에 적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한국어와 일본어 두 언어는 영어와 매우 달라서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기술적 성능의) 범위를 넓혀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이 전 세계 각국 언어로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에 영어와 전혀 다른 언어 체계에 대한 실험을 진행하는 테스트베드가 된다는 것이다.

한국어 사용 인구에 비해 한국어 번역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콘텐츠 업계 관계자는 “K팝이나 K드라마의 영향으로 유튜브나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서 한국어 번역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며 “이미 사람과 AI의 협업으로 번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더 정교하고 다양한 언어 번역이 가능한 AI가 필요하다”고 했다.

◇삼성과 네이버 견제 위해서?

AI 빅테크들은 신기술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도 높이 평가하고 있다. 피차이 CEO는 바드의 한국어 지원을 발표하면서 “1999년 서울에서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기사가 휴대폰 3대를 쓰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전자제품이나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개방적인 문화를 고려했다는 것이다.

구글의 한국어 AI 지원은 네이버와 삼성전자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도 있다. 전 세계에서 구글의 검색 시장 점유율은 90%대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네이버에 밀리고 있다. 바드가 한국어 지원을 하면서 구글이 한국에서 검색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는 전환점을 만들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검색이나 브라우저 같은 서비스는 사용자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서비스를 바꾸게 하기가 어렵다”면서 “해외 업체들이 AI 번역과 AI 챗봇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계기로 한국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