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스트리밍을 통해 렌터카를 원격 조종하고 있는 할로 직원 /할로

박건형의 홀리테크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5

지난달 말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가 시작됐습니다. 스타트업 할로(Halo)가 선보인 이 서비스는 고객이 렌터카를 주문하면 집까지 배송해줍니다. 그런데 기존 렌터카 업체와 다른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배송되는 차량에 운전자가 없다는 겁니다. 자율주행이 연상되지만 사실은 ‘원격 조종’입니다. 운영 센터의 원격 조종사가 차량을 마치 레이싱 게임처럼 운전하는 것이죠. 왜 이런 서비스가 등장했을까요. 자율주행으로 서비스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현실과 타협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빅테크와 스타트업, 완성차 업체들까지 앞다퉈 “자율주행 상용화가 곧 이뤄진다”고 장담했습니다. 2018년에는 일부 지역에서 상용서비스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 제한적으로 운행되는 사실상의 시범 서비스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미 사업을 접거나 파산한 업체도 부지기수입니다. 기술도 문제지만, 또 다른 장벽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현실과 타협한 서비스

할로의 원격 조종 렌터카 /할로

할로의 차량에는 6대의 카메라와 5G 모뎀, 안테나 등이 부착돼 있습니다. 조종사는 차량 주변을 보여주는 비디오 스트리밍과 센서 정보를 종합해 차량을 원격으로 운전합니다. 할로는 지난해 처음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긴급 상황에 대비한 보조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새로 시작된 서비스는 운전자가 없는 완전 원격 조종이 이뤄지고, 대신 바로 뒤에 안전 차량이 따라갑니다. 할로는 내년부터는 안전 차량도 배치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할로 차량은 시스템이 위험이나 이상을 감지하면 곧바로 정지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5G 서비스도 T모바일을 기본으로 사용하지만, AT&T와 버라이즌 통신망도 연결해 놨습니다. 혹시 모를 통신 장애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할로 창립자인 아난드 난다쿠마는 “경제적으로 실행 가능한 주문형 렌터카”라고 소개합니다. 지금까지의 렌터카는 기차역이나 공항, 주요 호텔 같은 특정한 거점을 두고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고객들이 원하는 장소에 배송하려면 누군가 직접 운전해서 가야하고, 막대한 인건비는 회사와 고객 모두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송이 완료되면 원격 조종 시스템은 꺼지고, 고객은 일반 렌터카처럼 사용한 뒤 다시 원격 시스템을 켜 반납할 수 있습니다. 할로는 현재 기아 니로EV와 쉐보레 볼트EV 20대로 서비스하고 있는데 2024년까지 수백대로 차량을 늘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마이애미 등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그래픽=김의균

이런 서비스를 하는 것은 할로 만은 아닙니다. 지난해 12월에도 스타트업 아르시모토가 고객의 호텔까지 삼륜 전기차를 무인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라스베이거스에서 시작했습니다. 이 회사는 올해 말까지 샌프란시스코, 샌디에이고, 바르셀로나 등에서 추가로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입니다.

◇웨이모, “사고 피할 수 없었다”

웨이모 자율주행.좌회전./김성모 기자

테크크런치는 “원격 조종업체들이 등장한 것은 실제 자율주행차가 등장하는데 최소 10년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고객들의 수요와 현재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을 조합한 대안이라는 것이죠. 실제로 자율주행차 업체들의 현재를 보면 이런 전망이 결코 과도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구글 웨이모의 재규어 I페이스 자율주행차는 지난 5월21일 샌프란시스코 도로 위로 나온 반려견을 치어 죽이는 사고를 냈습니다. 특히 자율주행차는 개를 감지했지만, 차량을 멈추거나 회피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웨이모측은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통해 당시 사고를 살펴봤지만, 충돌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이런 사고를 내면 법적으로 처리하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자율주행차의 경우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프로그램 오류는 없었는가 등 따져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심지어 규제나 보험조차 아직 제대로 없습니다. 기술 개발만큼이나 자율주행차 상용화의 가장 큰 장벽으로 여겨지는 부분들입니다.

구글 웨이모와 GM 크루즈가 자율주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샌프란시스코는 지난달 두 회사의 자율주행차 서비스 확대 신청을 보류했습니다. 웨이모와 크루즈는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정된 시간에 한해 밀집된 도심을 제외한 지역에서만 운행이 가능합니다. 이를 시간제한 없이 샌프란시스코 전역으로 확대하는 것이 두 회사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소방관조합, 샌프란시스코 경찰관 협회 등이 일제히 반대 성명을 냈습니다. 이들은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를 열거하며 시민의 안전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했습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처럼 언덕이 많고 길이 좁은 지역에서는 언제든 치명적인 사고가 날 수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도심이 교외보다 46배 어려워

GM의 자회사 크루즈의 자율주행차량.

크루즈에 따르면 피닉스 같은 교외 지역에서 운행할 때보다 도심을 운행할 때 자율주행차의 기술적 난도는 4658% 높아집니다. 실제로 경찰이 차를 세우려 하자 자율주행차가 교차로 반대편으로 빠른 속도로 달아나는 사건, 자율주행차가 멈춰 서면서 교통이 마비돼 강제로 견인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모빌리티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율주행 차량 사고는 일단 교통사고보다 훨씬 심각하게 받아들여진다”면서 “사고가 한번 날 때마다 장벽이 계속 높아지는 형국”이라고 했습니다.

LA타임스는 지난달 29일 사설에서 “자율주행차는 인간의 주의 산만과 실수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기술은 합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협업과 타협이 필요하고, 점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썼습니다. 자율주행이 모빌리티의 새로운 장을 열 것은 분명하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서비스 확대를 반대한다는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율주행 시장에 야심 차게 도전했던 업체들 가운데 감원을 하거나 문을 닫는 곳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언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모르는 서비스에 계속 돈을 쏟아부을 수는 없으니까요. 업계 선두로 꼽히는 웨이모조차 대규모 감원을 겪었고, 포드와 폭스바겐이 지원한 자율주행 스타트업 아르고AI는 지난해 파산했습니다. 포니AI는 자율주행 테스트 면허를 박탈당한 뒤 중국으로 거점을 옮겼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완성차 업체들은 목표 수정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완전 자율주행보다는 운전자가 더 편하고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첨단운전자보조장치(ADAS) 업그레이드에 힘을 쏟으며 미래를 기다리는 겁니다. 물론 테슬라처럼 안전장치를 줄이면서도 자율주행이 곧 된다고 장담하는 곳도 있습니다. 영원히 자율주행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더디게 오고 있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박건형의 홀리테크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809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