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 반등에 다소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시장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 기업들의 본격적인 실적 개선 시점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통제에 추가로 나선 것도 반도체 시장 빙하기를 더 연장시킬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3분기부터 본격적인 반등을 기대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어려움이 길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픽=백형선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28일(현지 시각) “스마트폰·PC 등 반도체의 큰 수요처였던 분야가 조금씩 살아나면서 시장 완화 신호가 나타나는 건 맞지만, 회복은 매우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며 “전체적인 반도체 수요 회복 시기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반도체 제조 업체들의 공급 과잉 문제가 완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는 특히 중국 경제의 회복세가 더딘 점이 반도체 제조 업체들의 사업 전망을 흐리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시장 회복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엔 동의하지만, 그 시기가 늦어지거나 회복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신중론을 내놓고 있다.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하반기에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에 대한 재고 소진이 계속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판매는 3분기에 소폭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미 반도체 기업 텍사스 인스트루먼트도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더디다”며 3분기 실적 전망치를 시장 예상보다 낮게 제시했다.

반도체 시장의 구원투수로 여겨지던 생성형 AI에 대해서도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만 TSMC의 웨이저자 CEO는 “생성형 AI 특수가 반도체 경기를 반등하게 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블룸버그도 “생성형 AI 산업 성장이 빠르지만 전체 AI 시장에선 아직 비중이 작기 때문에, 당장 반도체 시장을 끌어올리기엔 역부족”이라고 했다.

한국 반도체 주축인 메모리 시장도 아직 반등을 낙관하기엔 이르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평균 고정거래가격(1.34달러)은 전월보다 1.47% 내려갔다. D램 가격이 19.89% 하락한 지난 4월이나 2~3%대로 떨어진 5, 6월보다 하락폭이 줄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지만, 뚜렷한 반등 신호로 보긴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공급자와 구매자가 가격 합의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7월에는 PC용 D램 계약이 거의 체결되지 않았다”며 “칩 공급자 입장에서 반도체 수요 전망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업계에서는 수요 변동성이 예상보다 커지는 이른바 ‘채찍(bullwhip) 효과’ 탓에 기업들이 정확한 반도체 수요 회복 시기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본다. 채찍 손잡이를 살짝만 들어도 끝 부분에선 큰 파동이 생기는 것처럼, 작은 수요 변동이 실제 고객사인 제조업체에 전달될 때는 크게 부풀려져 변동폭이 불확실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미 CNBC는 “글로벌 PC 시장이 여전히 약세를 보이고 있어 향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며 “궁극적으로 반도체 기업이 실적을 회복하려면 스마트폰·가전 같은 최종 제품의 수요뿐 아니라 불확실한 거시경제가 회복되는 것이 관건”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