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패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한국·일본·대만 기업들의 기술 인력 확보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대학에 반도체 전문 학과를 신설하고 장학금을 주는 것은 물론,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대량 나눠 주는 등 기존 기술 인력 이탈을 막는 동시에 추가 인력 확보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공장이 빠르게 늘어나는 데 비해 기술자 양성은 더뎌 대규모 인력 부족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 발표에 따르면 오는 203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6만7000명가량의 반도체 근로자가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인력 확보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일본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 부흥을 내걸고 국내외 기업의 설비 투자 유치를 받고 있지만 정작 이를 가동할 인력이 크게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반도체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서 인력 양성이 오랜 기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 최대 인력 공급 회사 아웃소싱은 지난 2일 다른 기업들과 공동 출자로 반도체 분야에 특화된 인력을 양성·공급하는 자회사 ‘OS 나노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첨단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할 수 있는 기술 인력을 양성해 각 기업 현장에 배치한다는 계획이다. 이 업체는 현재 일본 나가사키현에 반도체 제조 설비 작동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연수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데 대만 TSMC, 소니 등이 공장을 새로 짓고 있는 구마모토현에도 새 연수 센터를 세울 계획이다.

그래픽=김현국

일본 기업들은 기존 반도체 인력을 붙잡기 위해 그동안 거의 하지 않던 자사주 지급까지 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소니는 향후 수년간 반도체·엔터테인먼트 부문 직원 3000여 명을 대상으로 1인당 평균 2000만엔(1억8000만원)어치의 주식을 지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위 임원진뿐 아니라 일반 개발직 직원까지 회사 주식을 받는다. 일본 자동차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도 최근 직원 2만명에게 회사 주식을 주기로 결정했다. 아사히신문은 “반도체 업계에서 전 세계적으로 첨단 공장 건설 움직임이 활발해지면서 인력 확보가 기업들의 최대 과제가 됐다”고 했다.

반도체 공장 건설이 활발한 미국에서도 기술 인력 확보 경쟁이 뜨겁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TSMC는 최근 전문 인력 확보 문제로 미국 애리조나 공장 가동을 1년 연기했다. TSMC는 최근 새로 짓는 공장에 인접한 애리조나주립대와 인력 양성 및 연구개발(R&D)을 함께 한다는 내용의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TSMC가 반도체 전공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고, 반도체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식이다. 인텔은 향후 10년간 1억달러(약 1300억원)를 들여 전국 대학에서 반도체 제조 관련 교육을 실시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국도 삼성·SK 등이 반도체 전문 학과를 신설했지만 의대에 밀려 인기가 낮고 기존 기술 인력도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미국, 일본으로 옮기고 있다”며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지어도 이를 돌릴 숙련된 기술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은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