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서강대 컴퓨터공학과엔 3학점짜리 ‘TV 소프트웨어 강의’가 열린다. LG전자 TV 전용 소프트웨어인 웹OS 등 가전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의 이론과 실제를 배우는 수업이다. 이강원 LG전자 TV SW개발담당 상무 등 LG전자 임직원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강의에서 특별한 성과를 보인 학생은 LG전자 입사 지원 시 가점 등 혜택을 받는다. LG전자 관계자는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가전 업계가 바뀌어 가고 있는데 관련 인재는 부족하다”며 “TV 소프트웨어를 학생들에게 알리고 인재를 선점하기 위해 직접 강의를 개설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도체 인재 확보를 위해 대학교에 계약학과나 관련 강의를 개설했던 기업들이 이제는 소프트웨어(SW), 인공지능(AI), 로봇, 클라우드 분야 등으로 산학(産學)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반도체에 이은 인재 확보 전쟁 2막이 올랐다는 분석이다. 시장 변화에 맞춰 기업들이 전문 인력을 맞춤형으로 양성하고 인재를 선점하려는 것이다.

그래픽=박상훈

◇AI 인재를 키워라... 입도선매 경쟁

최근 가장 인재 확보 전쟁이 치열한 분야는 AI다. 국내 대표 기업들은 학생들에게 등록금과 장학금, 생활비를 쥐여주고 채용까지 보장하겠다고 나선다. 국내 한 대기업 관계자는 “관련 인재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앞으로 시장 선도 가능성으로 이어진다”며 “모든 기업이 AI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곳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내년 성균관대에 계약학과인 채용 연계형 지능형소프트웨어학과를 만들기로 했다. 학·석사 통합 5년 과정에 총 50명을 선발해 AI에 특화된 인재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학생의 재학 기간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삼성전자 인턴십 프로그램, 삼성전자 해외 연구소 견학 등 다양한 체험 기회도 제공한다. LG전자는 지난해 연세대에 지능융합협동과정을, 서강대에 인공지능학과를 개설했다.

KT는 올해부터 카이스트와 포스텍에 KT AI 융합 석사과정을 설치해 운영하고 있고 네이버도 오는 9월 서울대에 ‘멀티모달 딥러닝의 이론과 응용’이라는 과목을 신설한다. 네이버 관계자는 “최신 AI 기술 연구 동향 등을 교육하고 실제 네이버 AI 서비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중심으로 강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필요한 인재 맞춤형으로 키우겠다

기업의 목적은 당장 ‘전력화’가 가능한 인재풀을 확보하는 것이다. 학과 커리큘럼을 짤 때부터 기업이 직접 참여해 필요한 인재를 맞춤형으로 키워낸다. 이론 중심이 아닌 실무형 교육에 중점을 둔다. 삼성 관계자는 “AI 학과의 경우 이론보다는 가전이나 스마트 기기에서 사용자 요구 사항을 지능적으로 파악해 맞춤형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기술을 교육하는 식”이라고 했다. 그동안 기업들은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 사원을 재교육하는 데 만만찮은 비용을 들였는데, 계약학과를 운영하며 맞춤 인재로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상 이득이라는 계산이다.

현대차도 올해 고려대에 스마트모빌리티학부를 설치했다. 이 학부에선 내연기관차 중심 교육이 아닌 현대차 미래 기술인 수소차, 로보틱스 관련 커리큘럼을 진행한다.

정부도 계약학과를 장려하는 추세다. 기존 계약학과는 대학 전체 입학 정원의 20% 내에서만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데, AI, 빅데이터 등 첨단 분야는 입학 정원의 50%까지 가능하도록 늘렸다. 교육부 관계자는 “첨단 분야의 경우 대학에서부터 적시에 인재를 길러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계약학과를 나오면 기업 취업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최근엔 공대보다 의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실제로 작년 반도체 계약학과 수시 모집에는 상위권 합격자들이 의약대 진학을 하면서 추가 합격이 6차까지 진행됐다. 대기업 관계자는 “상위권에서의 의약대 쏠림 현상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등록금 지원 등 각종 혜택이 있기 때문에 인재들이 몰릴 것으로 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