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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홀리테크에 합류한 조선일보 테크부 최인준 기자입니다. 화제가 되는 테크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바이오젠·에자이가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신약 '레켐비'(성분명 레카네맙). /로이터=뉴스1

지난 21일 일본 바이오 기업 에자이와 미국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알츠하이머 신약 ‘레카네맙’이 일본 후생노동성으로부터 판매 승인을 받았습니다. 지난달 미국 FDA(식품의약국)에 이어 최대 제약바이오 시장 중 하나인 일본에서도 알츠하이머 신약이 풀리게 된 것입니다. 후생노동성의 통상적인 승인 절차를 감안하면 이르면 오는 10월에는 일본 전역에서 신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됩니다.

레카네맙이 알츠하이머를 완치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 각종 대증요법 밖에 없던 치매 환자들에게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에도 지난 6월 레카네맙 승인 신청이 이뤄졌기 때문에 빠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에는 판매 허가 여부가 정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일본에서도 승인이 났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무난히 이 신약을 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최근 2~3년 사이 치료제와 더불어 발병을 늦출 수 있는 백신, 조기에 알츠하이머 발병을 잡아낼 수 있는 진단 기술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멀게만 느껴졌던 알츠하이머 정복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알츠하이머 초기 환자 대상 치료제 나온다

알츠하이머는 사람 몸에서 가장 복잡한 영역인 뇌·신경과 관련된 질환이기 때문에 다른 분야보다 신약 개발이 더뎠습니다. 의료 기술의 발전으로 암의 경우 완치를 하거나, 5년 이상 생존하는 환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과 달리 알츠하이머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었습니다.

일본 준텐도대 의과대학원 연구팀이 노화와 관련된 당단백질(SAGP)을 제거하는 백신이 알츠하이머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고 30일(현지 시각) 밝혔다. /연구팀 제공

하지만 최근 바이오 기업들이 알츠하이머 치료에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미국 바이오젠은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알츠하이머 치료제인 ‘아두헬름’의 상용화에 성공했습니다. 단순히 증상을 완화하는 게 아니라 질병 원인을 치료하는 치매 치료제를 내놓은 건 처음입니다. 다만 기대했던 것보다 효능이 떨어지고 일부 부작용 논란으로 인해 시장에서의 반응은 좋지 않습니다. 바이오젠은 두 번째 알츠하이머 신약인 ‘레카네맙’으로 돌아왔습니다. 업체가 공개한 임상 3상 결과에 따르면 레카네맙은 환자의 인지기능 저하 속도를 27%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두헬름보다 효능이 개선됐을 뿐 아니라 뇌부종·뇌출혈 등 부작용 발생률도 41%에서 3% 미만으로 대폭 감소했다고 합니다.

최근 개발을 마친 알츠하이머 신약들은 대부분 발병 초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는 비교적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입니다. 알츠하이머 질환은 뇌에 아밀로이드 베타라는 단백질이 쌓이면서 정상적인 신경세포가 파괴되고, 뇌 위축이 일어납니다. 레카네맙은 원인 물질로 지목되는 아밀로이드 베타를 제거해 병의 진행을 늦추는 작용을 합니다.

효능이 한층 개선된 신약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일라이릴리는 초기 환자의 증상 진행률을 36% 늦추는 알츠하이머 항체 치료제 도나네맙을 개발했습니다. 업체는 임상 3상에서 위약 대비 환자들의 알츠하이머 진행을 35%가량 늦췄다고 밝혔습니다. 아밀로이드 베타와 함께 유력한 알츠하이머의 질환 원인으로 거론되는 뇌 내 타우(tau) 단백질 수준이 높은 알츠하이머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 시험에서 도나네맙은 인지 및 기능 저하를 측정하는 주요 효능평가 기준과 2차 평가 기준을 모두 충족했습니다.

임상 시험 참가자 중 약 72%는 치료 후 18개월에 플라크가 제거돼 치료를 마쳤습니다. 치료 18개월 차에 일상생활 수행능력 저하가 40%가량 더 적었고 위약군보다 알츠하이머 다음 단계로 진행될 위험이 39% 낮게 나왔다고 합니다. 기존에 나온 치료제와 비교하면 크게 진전된 수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기 진단 기술 개발

암과 같은 중증 질환과 마찬가지로 알츠하이머 환자들도 얼마나 빨리 치매 증상을 잡아내는지가 중요합니다. 어떤 질환이든 조기에 발견해야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고, 치료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최근 알츠하이머 조기 진단에서 큰 진전을 보이고 있다는 희소식이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대형 병원에 가지 않고도 간단한 혈액 검사를 통해 알츠하이머 질환에 대한 위험도를 미리 알 수 있는 진단 키트가 나왔습니다. ‘퀘스트 다이그노스틱’이라는 업체는 혈액 속에 베타 아밀로이드 단백질을 측정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예측해주는 진단 키트 ‘AD 디텍트 테스트’를 개발했습니다.

진단 키트이지만 가정에서 환자 혼자 검사할 수는 없습니다. 의사의 감독 하에 혈액 추출을 하고 나중에 검사 결과를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는 방식입니다. 회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검사 비용은 회당 399달러(약 53만원)입니다. 통상 알츠하이머는 MRI(자기공명영상) 검사, 인지 테스트, 신체 검사 등 대형 병원에 가야만 알츠하이머 진단이 가능했습니다. 진단을 위해선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 시간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소비자가 원할 때 언제든 간편하게 간편하게 검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조기에 질환 발병을 알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서만 600만명이 넘는 사람이 알츠하이머로 고통받고 있고, 오는 2050년에는 1300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 현재 시장에 나오고 있는 알츠하이머 치료제들이 초기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조기 진단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그만큼 많은 환자들이 알츠하이머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아그라로 알츠하이머 치료?

알츠하이머 정복을 위해 현재 전세계 유수의 바이오 기업과 대학·연구소들이 치료제, 백신 개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애초에 다른 신약 연구를 하다가 우연히 치료제 개발의 가능성을 발견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연구는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치매 발병률을 크게 낮췄다는 내용입니다. 미국 클리블랜드병원 게놈의학연구소의 페이슝 쳉 박사는 지난 2012년 12월 국제학술지 ‘네이처 에이징’에 “비아그리의 ‘실데나필’ 성분이 알츠하이머 치료제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실데나필은 말초 혈관을 확장시켜 혈액의 원활한 흐름을 돕는 기능을 합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실데나필을 복용한 미국인 700만명의 6년 치 진료 기록을 분석한 결과 다른 사람보다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이 69% 낮게 나왔다고 합니다. 다른 고혈압, 당뇨병 치료제를 복용한 사람들보다 최대 발병위험이 63% 낮게 나왔습니다.

백일해·파상풍 백신 '아다셀', 10년마다 재접종 승인

파상풍·디프테리아 백신(Td),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Tdap) 등 다른 질환에 쓰이는 백신 신약이 알츠하이머 위험을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미국 맥거번대 연구팀은 백신과 알츠하이머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한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65세 이상이면서 알츠하이머 발병 기록이 없는 165만명의 데이터를 선별했습니다. 연구진이 해당 코호트를 8년간 추적한 결과, 알츠하이머 발병률은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먼저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을 접종한 사람들 중에서는 7.2%가 알츠하이머에 걸렸습니다. 해당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의 알츠하이머 발병률은 10.2%였습니다. 연구진을 이를 토대로 계산해 파상풍·디프테리아·백일해 백신이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30%가량 낮출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대상포진 백신은 알츠하이머 발병 위험을 25%, 폐렴구균 백신은 27%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각 백신의 알츠하이머 예방 효과는 알츠하이머 치료에 사용되는 3가지 항(抗)아밀로이드 항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연구진은 밝혔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 치료제 개발에 상당한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백신이 알츠하이머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었던 것은 해당 백신이 독성 단백질에 대한 우리 몸의 면역 반응을 강화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알츠하이머를 유발하는 독성 단백질이 머릿속에 축적되는 것을 막아줄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직접 원인 물질을 제거하든, 간접적으로 독성 단백질을 줄이든 전세계 수많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는 실낱 같은 희망이 더 생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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