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로이터 뉴스1

영국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팹리스)인 ARM은 올해 기업공개(IPO) 시장의 최대어로 꼽히고 있지만, 7년 전 회사를 인수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에게는 실망스러운 투자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3일(현지 시각)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6년 320억 달러(약 42조2000억원)에 ARM을 인수하면서 손 회장은 회사가 5년 안에 5배 성장할 것이라 자신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손 회장은 ARM 인수를 “내 운명”이라고 말할 정도로 높은 기대를 가졌고, 스마트폰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도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며 기업가치가 폭증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하지만 IPO 시장 관계자들은 이달 뉴욕증시 상장을 앞둔 ARM의 목표 기업가치를 500억~550억 달러 사이로 추정합니다. 7년 전 인수가에 비해 최대 72% 성장한 수준으로, 당초 손 회장이 꿈꿨던 ‘5배 성장’과는 거리가 큽니다. 이미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시장을 90% 이상 장악한 ARM은 스타트업처럼 폭발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었고, 손 회장이 점찍었던 사물인터넷(IoT) 시장도 생각만큼 커지지 않았습니다.

손 회장은 알리바바·우버 등 쟁쟁한 기업의 초기 투자자로 막대한 투자수익을 올린 ‘투자의 귀재’로 인식되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론 그의 투자가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소프트뱅크 산하 벤처캐피털(VC)인 비전펀드는 미중 갈등, 기술주 하락 등으로 디디추싱과 쿠팡 등 투자사 주가가 폭락하며 최근 6개 분기 연속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며 휘청였습니다. 투자업계에선 “지금까지 손 회장의 성공은 시기를 잘 탄 것일 뿐”이라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연이은 투자 손실로 궁지에 몰려 있는 손 회장으로서는 ARM의 성공적인 상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소프트뱅크는 투자처의 보유 지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고, 새로운 투자처에 자금을 넣는 방식으로 투자를 해왔습니다. 오랜 ‘자금 창구’였던 알리바바의 지분을 전부 정리한 상황에서, ARM이 그 자리를 대신해야 합니다. 손 회장이 지금처럼 절실했던 때가 또 있었을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