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양진경

서울에서 온·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하는 A씨는 최근 간편 결제 서비스 ‘네이버페이’를 활용하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 이달 초 출간된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오기 전 우선 예약 판매를 진행했는데, 온라인 구매자들이 애용하는 네이버페이가 갑자기 이용 정지됐다. 예약 판매로 10일 후 일괄 배송하는 방식이었는데, 결제 후 3일 내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는 네이버페이 이용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서비스가 중단된 것이다. 더 당혹스러웠던 것은 이용 정지를 해제하는 과정이었다. 네이버페이 측은 자필 소명서를 요구했다. A씨는 “컴퓨터로 작성해 직인을 찍은 소명서를 보냈는데, ‘수기(手記) 작성 이후 다시 제출해 달라’는 답신을 받았다”며 “초등학생 때도 안 써본 반성문을 쓴 느낌”이라고 말했다.

‘프로젝트 꽃’ 등 중·소상공인 상생 캠페인을 벌이는 네이버가 실제로는 플랫폼의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여전히 중·소상공인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네이버페이의 이런 자필 소명서 요구는 지난 2016년부터 이어져왔다. 배송 지연과 반품·교환 처리 지연 등에 대한 벌점(페널티) 제도를 운용하며 벌점 누적으로 이용 제한된 가맹점에 경고 효과를 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필 소명서를 쓴 가맹점들은 “굳이 수기를 강요하는 건 소비자 보호 명목을 넘어선 갑질”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림 포스터를 주문 제작 받아 팔다가 작년 자필 소명서를 제출했던 자영업자 B씨는 “고객에 일주일 후 배송 등 사전 고지를 했다며 네이버페이에 전화해 사정을 설명했지만, 기계처럼 자필 소명서를 보내라고만 반복했다”며 “굴욕적인 경험이었다”라고 했다.

자필 소명 관련 내용은 공개된 네이버페이 이용 약관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은 비공식적 제재 수단이다. 자필 소명서 양식도 제재 수단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양식에는 ‘이용 정지가 반복될 경우 이용 정지 해제가 불가능할 수 있음’에 동의하게끔 강제하는 문항이 있다. 이를 받아들인다고 자필로 기재해야 소명서를 접수한다.

자영업자들이 자필 소명서를 제출하면서까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네이버페이를 이용하는 이유는 온라인 간편 결제 시장에서의 영향력 때문이다. 네이버페이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작년 12월 기준 1680만명이다. 국민 3명 중 한 명이 네이버페이를 쓴다. 한 가맹점주는 “신용카드보다 결제 수수료가 더 높지만 결제 방식에서 빼고 싶어도 온라인 매출 대부분이 네이버페이에서 나와 어쩔 수가 없다”면서 “구매자 입장에선 (판매 사이트) 회원 가입 없이 결제할 수 있고, 리뷰를 작성하면 포인트 환급도 받을 수 있어 많이들 찾는다”고 했다. 네이버페이 관계자는 “(가맹점이) 더 책임감을 갖고 성실하게 운영해주면 좋겠다는 취지”라며 “상습적이거나 방만한 운영을 하는 사례를 억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네이버의 갑질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전 네이버에선 구매자 실수였음에도 판매자가 강제 퇴점 당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구매자가 구매 확정을 눌러야 네이버가 판매자에게 대금을 지급해주는데, 구매자가 배송받기 전 구매 확정을 실수로 누른 것을 부당 거래로 규정하고, 사전 통보 없이 강제로 내쫓겼다는 것이다. 소명을 거쳐 재입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고스란히 판매자가 떠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