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 업체 크래프톤은 개발 조직 대다수를 자회사로 분사(分社)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사내 개발 스튜디오를 독립 법인으로 전환해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우고, 본사는 개발보다 게임 콘텐츠 배급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6월 AI 게임 스튜디오 ‘렐루 게임즈’를 이미 독립시켰다. 하지만 크래프톤 직원들의 생각은 다르다. 회사의 실적과 주가 모두 악화한 상황에서 “실적이 부진한 게임 스튜디오를 분사시킨 뒤, 자생이 안 되면 폐업시키는 방식으로 간접 구조조정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지난 3월 크래프톤은 음성 인공지능 서비스 오딕을 개발한 벨루가실을 독립시키려다가 소속 직원들의 반대에 부딪히자 8월 사업을 종료하고 개발팀을 해산했다. 크래프톤 주가는 지난 10일 15만1200원으로 마감해 공모가(49만8000원)의 30% 수준까지 떨어졌고, 올 2분기 영업이익은 1315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0% 넘게 줄었다.

실적 악화와 주가 부진으로 경영 효율화에 나서는 것은 크래프톤뿐만이 아니다. 코로나 기간 급성장하며 우수 인력 영입에 사활을 걸었던 IT 업체 상당수가 같은 처지이다. 규모가 영세한 스타트업뿐 아니라 대형 IT 업체들까지 앞다퉈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희망퇴직을 받고 있는 업체들이 수두룩하다”면서 “신규 채용까지 급감하면서 구조조정이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엔씨, 카카오도? 업계 벌벌

엔씨소프트는 지난 5일 ‘변화경영위원회’를 발족하고 경영 효율화 작업에 착수했다. 엔씨소프트의 올 2분기 영업이익은 353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0% 줄어들었고, 주가는 11일 22만7500원으로 마감해 최고가(104만원) 대비 5분의 1 토막이 났다. 실적과 주가 모두 부진하자 조직 체계 개편과 비용 절감 등을 논의하는 ‘컨트롤 타워’를 세운 것이다. 엔씨소프트는 “인위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지만, 직원들은 동요하고 있다. 한 엔씨소프트 직원은 “실적이 좋지 않거나 개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조치가 있을 것이란 소문이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이미 수차례 구조조정을 통해 자회사 인력을 줄이고 있다. 기업간거래(B2B) 자회사인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임직원 200여 명이 지난 9월까지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2019년 분사 당시 48억원이었던 영업손실 규모가 지난해 1406억원으로 불어나자 사업 자체를 없앤 것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지난 6월 사실상 희망퇴직에 해당하는 이·퇴직제도 NCP(넥스트 챕터 프로그램)를 시행했다. 손자회사인 엑스엘게임즈, 골프 사업 자회사인 카카오VX 역시 희망퇴직을 받았다.

숙박 플랫폼 기업 ‘야놀자’는 지난달 전사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올 상반기에 영업손실 284억원을 내면서 적자 전환하는 등 실적이 악화하자 직원 수를 줄이는 자구책을 꺼내든 것이다. 컴투스의 메타버스 자회사인 ‘컴투버스’도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IT 분야 채용도 줄어

IT 업계의 채용도 급격히 줄고 있다. IT 업계 채용에 주로 사용되는 플랫폼 원티드랩에 따르면, 2022년 9월 6491건이던 신규 채용 공고는 지난 9월 4443건으로 약 32%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채용 지원 건수는 13만2514건에서 16만3709건으로 24% 늘었지만, 실제 합격 건수는 1338건에서 902건으로 33% 줄었다. 업계 관계자는 “IT 업체들은 2021년까지 경쟁적으로 연봉을 올리는 동시에 사람을 많이 뽑는 등 인력 쟁탈전을 해왔다”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본격적으로 몸집을 줄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