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 장 알리바바 클라우드 회장이 지난해 10월 열린 연례 콘퍼런스에서 '리스크5(RISC-V)' 기반의 코어 프로세스 ‘쉬안톄’ 시리즈의 개발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알리바바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향후 반도체 설계 기술과 IP(지식재산권)까지 확장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달 초 로이터에 따르면, 미 정치권은 “중국 기업들이 반도체 설계 표준이자 IP 일종인 리스크5(RISC-V)를 통해 미국의 제재를 우회하고 있다”며 “중국 기업들의 리스크5 기술 사용을 차단할 제재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바이든 행정부에 전달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도 “중국 반도체 업계에서도 리스크5가 미·중 반도체 갈등의 새로운 전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현재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미국 인텔, 영국 ARM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두 회사는 반도체가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를 받아들이는 명령어 집합에 대한 IP를 갖고 있는데, 수십 년간 전 세계 표준처럼 쓰였다. 반도체 업체들은 이 회사들의 IP를 기반으로 반도체를 설계하고 제작한다. 하지만 2010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에서 새로운 명령어 집합인 리스크5를 개발한 뒤,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개방형)로 전 세계에 공개했다. 리스크5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로 활용됐지만 미국의 대중 제재가 시작되자 상황이 돌변했다.

미국은 ARM을 비롯한 서구권 국가들의 반도체 기술 중국 판매를 막고 있다. 그러자 중국 기업들은 리스크5 기반 반도체 설계에 나섰다. 최근 화웨이 스마트폰에 탑재된 첨단 반도체도 리스크5 기반으로 설계된 것으로 알려졌다. 리스크5는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재단에서 운영하는데, 핵심 참여 기업 21곳 가운데에는 알리바바·화웨이·텐센트·ZTE 등 중국의 대표 기업들이 모두 포함됐다. 중국 기업들은 “리스크5를 기반으로 개발한 각 사의 반도체 설계 특허를 공유하고, 서로 소송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합의도 맺었다. 중국 기업들이 함께 독자적인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리스크5 기반 설계 반도체 수(코어 기준)는 지난해 100억개를 넘어서고, 연평균 150%가량 성장하고 있다. 구글·퀄컴 등 미국 기업들도 ARM 같은 회사에 로열티를 내지 않아도 되는 리스크5를 적극 활용하는 추세다. 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 정부가 의지를 갖더라도 오픈소스까지 제재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리스크5(RISC-V)

미국 UC버클리가 개발한 반도체 설계 IP(지식재산권). 스마트폰·PC에 들어가는 반도체 대부분은 영국 ARM과 미국 인텔·AMD 등이 개발한 반도체 설계 IP를 활용하지만, 사용료를 내야 한다. 반면 리스크5의 반도체 설계 자산은 전 세계 누구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