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수 카카오 전 의장이 23일 오전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주가 시세조종 의혹과 관련해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받으러 출석하고 있다./뉴스1

올 초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서 주식 시세를 조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범수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3일 여의도 금융감독원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이날 10시 포토라인에 선 김 전 의장은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고만 답했다. 금감원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은 김 전 의장을 대상으로 SM엔터 시세조종에 김 전 의장의 지시가 있었는지, 또는 보고를 받았는지 등에 대해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된 데 이어 창업자인 김범수 전 의장까지 금융 당국에 출석하면서 카카오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게 됐다. 법조계와 증권가에서는 아직 김 전 의장을 비롯한 경영진 대상 수사 및 재판 결과를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본다. 금감원은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지만, 카카오는 “시세조종이 아닌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IT 업계에서는 이번 시세조종 의혹 사건이 처벌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논란을 빚어 온 ‘카카오식 성장 공식’의 부작용과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성공만 하면 된다는 경영진의 방만한 인식이 회사를 손쓰기 힘든 상황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남의 돈으로 공격적 투자

카카오의 문어발식 사세 확장이 가속된 시점은 2014년 포털 다음과 합병한 직후부터다. 2014년 카카오페이를 통해 간편 결제 기능을 지원하면서 카카오톡 안에서 결제·커머스가 가능해졌고, 2015년 카카오택시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모빌리티 산업으로 발을 넓혔다. 카카오뱅크가 인터넷은행 예비 인가를 받으면서 금융업에도 진출했다. 카카오는 이 과정에서 중소·중견기업을 비롯해 여러 스타트업을 인수했고, 계열사는 2014년 26개(연결 기준)에서 올 상반기 기준 146개로 불어났다.

문제는 이런 문어발식 확장이 대부분 외부 투자를 받아 남의 돈으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카카오는 계열사 기업공개(IPO)를 통해 투자 자금을 돌려주는 전략을 세웠다. 2021년 상장 당시 카카오페이 2대 주주(지분 45%)는 알리페이를 운영하는 중국 앤트그룹이었고, 2020년 상장한 카카오게임즈도 중국 게임사 텐센트와 한국 넷마블에서 수백억원대 투자를 받았다. 이번 SM 인수전도 카카오엔터를 꼭 상장시켜야 하는 상황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투자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엔터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와 싱가포르투자청에서 1조2000억원이라는 막대한 투자를 받은 상황으로, 이 때문에 기업 가치를 두 배 이상 끌어올려야 하는 입장이었다”면서 “결국 무리해서라도 SM을 인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느슨한 계열사 관리로 통제 불능 빠져

카카오 김 전 의장은 계열사 대표에게 스타트업처럼 회사를 이끌도록 재량권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 출신 고위 관계자는 “카카오는 계열사 대표들에게 많은 재량권을 주고, 상장을 통한 보상을 약속한다”며 “각 계열사가 마치 카카오 속의 스타트업처럼 움직였다”고 말했다. 계열사 경영진의 독단적인 의사 결정이나 판단 착오를 바로잡을 수단조차 마땅치 않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카카오헬스케어의 혈당 관리 서비스 같은 스타트업 아이디어 도용 의혹이 터졌고,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상장 직후 수백억원대 스톡옵션을 행사하면서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일도 벌어졌다. 구성원이 대기업이 된 카카오에 걸맞지 않은 스타트업식 성공 지상주의에만 빠져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는 반복되는 여러 사고에 대해 매번 시정을 약속했지만 번번이 지켜지지 않았다. 작년 4월 “문어발식 확장을 자제하겠다”며 계열사 30~40곳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올 상반기 카카오 계열사 수는 약속 당시(138개)보다 8개 더 늘었다. 2021년에는 김 전 의장이 골목상권을 침해하지 않겠다고 공언했지만, 지금까지 철수한 사업은 기업 대상 꽃·간식·샐러드 배달 사업과 장난감 도매업 두 곳뿐이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카카오가 최근 계열사에 고삐를 쥐겠다며 핵심 경영진을 중심으로 한 ‘CA협의체(구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를 발족시켰지만, 외부 투자 지분이 많은 계열사를 상대로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라며 “지금까지 사업을 모두 지키면서 혁신하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