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AP 연합뉴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를 해고한 오픈AI 이사회의 야심 찬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갈 전망이다. 20일(현지 시각) 이사회가 올트먼의 복귀를 최종 거부하자, 750명의 오픈AI 직원은 “이사진이 전원 사임하고, 올트먼을 복직시키지 않을 경우 우리는 즉시 올트먼이 새롭게 맡게 된 마이크로소프트(MS) AI 자회사로 이직할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서에 서명했다. 오픈AI 전체 직원의 95% 이상에 해당하는 규모로, 서명자 중에는 미라 무라티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주요 경영진과 올트먼 해고를 주도했던 일리야 수츠케버 오픈AI 이사(수석 과학자)도 포함됐다. 수츠케버는 X(옛 트위터) 계정에 “나는 오픈AI를 망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이사회의 행동에 동참한 것을 깊이 후회하고 있다”며 “회사를 다시 하나로 뭉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트먼은 이 게시물에 빨간 하트 3개를 보내며 지지를 표시했다.

테크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개발 방식에 대한 철학적 갈등에서 시작된 스타 기업인 한 사람의 축출 사태가 미래 글로벌 AI 산업 발전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트먼은 고성능 AI의 잠재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일단 서비스를 내놓고 보자는 ‘급진파’이다. 올트먼이 MS에서 AI 개발을 총괄하든, 오픈AI로 돌아가든 진정한 AI 열풍(craze)이 이제부터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AI의 위험성을 고려해 상용화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주장하며 올트먼 축출을 주도했던 AI 온건파의 세력이 꺾인 것은 최소한의 가드레일(안전 장치)이 사라진 것과 같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러스트=김성규

◇오픈AI, 올트먼 중심의 ‘시즌2′로

대표적 온건파로 올트먼 해고에 앞장섰던 수츠케버까지 올트먼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갈등 구도는 애덤 디앤젤로 쿼라 CEO, 기술 사업자 타샤 매콜리, 헬렌 토너 조지타운 보안 및 신흥 기술 센터 디렉터 등 사외이사 3명과 오픈AI 전체가 대립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들이 끝까지 올트먼 복귀를 거부해 직원들이 모두 관두게 되면 오픈AI는 존립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결국 새 이사진을 꾸려 올트먼이 복귀하거나 올트먼이 이끄는 MS 자회사에 오픈AI 임직원이 모두 흡수되는 두 가지 선택지만 남은 셈이다. 어느 경우든 오픈AI는 ‘투자자의 이익이 아닌 인류 전체의 번영을 위해 AI를 개발한다’는 창립 이념과 결별한 ‘완전 영리 기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일 더 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이사회는 오픈AI의 경쟁사이자 오픈AI 출신인 다리오 아모데이가 설립한 앤트로픽에 합병 제안을 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오픈AI 직원이 전부 퇴사하면 합병 자체가 의미 없어진다.

테크 업계에선 재빨리 올트먼 영입에 나선 사티아 나델라 MS CEO의 판단력이 빛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올트먼을 비롯한 오픈AI 직원의 ‘단체 이적’을 언급하면서 이사회를 무력화하고 판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나델라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올트먼이 거취를 어떻게 선택하든 지지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올트먼이 오픈AI로 복귀하면 MS는 최대 투자자 자격으로 이사회 참여를 요구할 전망이다. 이날 MS 주가는 전날 대비 2.05% 상승해 사상 최고가인 377.44달러에 마감했다.

◇가드레일 사라진 AI, 우려 커졌다

시애틀타임스는 “올트먼의 승리는 AI 혁신을 가속화할 수 있다”며 “스타트업과 투자자에겐 좋은 소식이지만, AI 기술이 안전장치 없이 마구 커질 것에 대한 우려도 가중되고 있다”고 했다. 공공의 이익이라는 명분이 허망하게 무너지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AI 서비스를 내놓는 데만 치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밀리 벤더 워싱턴대 교수는 “MS가 오픈AI를 최종 흡수할 경우, 단일 기업이 별다른 규제나 감시를 거치지 않고 방대한 AI 데이터를 손에 넣게 되는 꼴”이라며 “산업 균형 측면에서 봤을 때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오픈AI라는 강력한 무기를 갖게 된 MS가 앞서나갈 경우 구글, 메타, 아마존 같은 경쟁 업체들도 안전보다는 상용화에 초점을 두고 AI를 개발할 수밖에 없다.

올트먼은 자체 규제를 중시했던 이사회를 제거하는 대신, 각국 정상과 국제기구들에 AI 규제 정책을 정립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AI 규제 기구를 통해 AI의 위험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한 AI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있어도 핵 개발을 하는 북한 같은 나라가 있는 것처럼, 일단 기술이 개발된 이후엔 국제적 합의로 통제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고성능 AI의 출현이 이번 사태로 앞당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