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삼성전자

소프트웨어로 자동차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가 IT 기업들의 새로운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IT 기업들은 완성차·부품 기업들과 손잡고 잇따라 SDV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내놓고 있다. 운전자의 편의를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집에서도 차량을 제어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오는 9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에서도 빅테크들이 SDV 기술을 대거 선보일 예정이다. 자동차 전장(전자장비)과 소프트웨어가 미래 자동차인 ‘바퀴 달린 스마트폰’을 구현하는 데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IT 업계에서는 엔진 중심이던 자동차 산업이 전기차로 전환되면서 두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SDV의 역할이 더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마켓인사이트에 따르면 2022년 358억달러(약 46조9000억원) 규모였던 SDV 시장은 2032년 2498억달러로 성장할 전망이다.

그래픽=양진경

◇삼성·LG도 SDV 기술 경쟁

삼성전자는 자사 가전 연결 플랫폼인 ‘스마트싱스’를 자동차까지 확대한다고 4일 밝혔다. 이를 위해 완성차 기업인 현대자동차그룹과 협력하기로 했다. 두 회사는 집에서 자동차를 제어하고, 자동차에서 집의 가전을 제어하는 서비스를 개발한다. 예를 들어 집에서 스마트싱스 앱으로 차량 시동, 창문 개폐, 전기차 충전 상태를 확인하고 차량에서는 집안의 TV, 에어컨 등 가전과 전기차 충전기를 제어하는 식이다. LG전자는 캐나다 부품 업체 마그나와 협업해 인포테인먼트(주행 정보와 엔터테인먼트)와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을 통합한 플랫폼을 개발했다. 두 기능을 하나의 부품으로 합쳐 각 부품이 차지하던 전체 부피를 줄여 차량 공간을 확보하고 비용도 낮췄다. LG전자는 “빠른 데이터 처리를 통해 더욱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주행할 수 있다”고 했다. LG전자는 이번 CES에서 SDV 기술을 집약한 콘셉트카 ‘알파블’을 공개한다.

빅테크들도 SDV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네덜란드 톰톰과 개발한 인공지능(AI) 비서를 올해 CES에서 공개한다. 운전자가 생성형 AI와 대화하면서 경로를 찾고 창문을 열고 닫거나 온도를 조절하는 등 차량 내부 기능을 음성으로 제어할 수 있다. 구글도 CES에서 음성만으로 차량 제어와 구동이 가능한 ‘안드로이드 오토’가 적용된 차량을 전시한다. 구글은 프랑스 완성차 업체 르노와 함께 자동차용 소프트웨어(SW)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 밖에 퀄컴은 아마존웹서비스(AWS)와 SDV 개발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고, 일본 소니와 혼다가 합작한 소니혼다모빌리티는 엔터테인먼트 기반 전기차 ‘아필라’를 개발했다. 소니의 게임·영화·음악 서비스를 즐길 수 있는 아필라는 2025년 출시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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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전장, 효자사업으로

IT 기업들이 자동차 소프트웨어 분야에 진출하는 이유는 결국 소프트웨어가 미래 자동차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자동차가 스마트폰 같은 거대한 전자기기가 되면서 여러 기능을 수행할 소프트웨어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는 부품 교체 없이 업그레이드만으로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장기적으로 자동차용 앱을 판매하는 등 지속적인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SDV는 이미 IT 기업 실적에 큰 보탬이 되며 핵심 사업으로 자리 잡고 있다. LG전자 전장을 담당하는 VS 사업본부의 지난해 3분기 매출은 2조5035억원, 영업이익은 1349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3분기 기준, 영업이익은 모든 분기를 통틀어 최대치이다. 지난해 수주 잔고만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연 매출 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의 전장 자회사 하만도 지난해 3분기 매출 3조8000억원, 영업이익 45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IT 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도 갈수록 하드웨어보다는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느냐를 따지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자동차 산업에서도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Software Defined Vehicle의 약자. 소프트웨어로 차량 내 장치를 제어하고 주행 성능과 편의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자동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