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현지 시각)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24’의 한국수자원공사(수공) 전시장. 수공의 지원을 받은 여러 스타트업 부스 중 한 곳에서 재밌는 시연이 벌어졌다. 잉크 묻은 옷감을 물에 담근 후 어른 주먹만 한 기계를 넣자 자잘한 거품이 뿜어져 나오며 20분 만에 얼룩을 씻어냈다. 세제는 한 방울도 들어가지 않았다. 물을 전기분해해 알칼리성 물질인 수산화이온을 만들어 세탁하는 원리다. 수자원공사의 초기 창업 패키지 대상 기업으로 선정된 젠21이 개발한 기술이다. 김아름 젠21 부사장은 “세제 없이 세탁하는 세상이 멀지 않았다”며 “세제 주성분인 계면활성제로 인한 피부 질환과 환경오염도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 이슈가 커지면서 인공지능(AI), 디지털, 에너지 기술을 접목해 물 문제를 해결하는 ‘물 테크’가 각광받고 있다. 올해 CES에선 수공의 지원을 받은 국내 물 분야 스타트업 19곳이 세계 시장에 혁신 기술을 선보였고, 이 중 4곳이 CES 혁신상을 총 6개 받았다.

그래픽=김현국

◇수준 높은 국내 물 테크

대표적인 곳이 솔라리노다. 솔라리노는 바닷물 20L를 넣으면 태양열을 이용해 24시간 동안 깨끗한 담수(淡水) 5L를 만들어내는 ‘개인용 무(無)전력 해수 담수기’를 개발했다. 주변에 흙탕물 같은 더러운 물이라도 있으면 천이나 종이로 필터를 만들어 물을 거를 수 있지만, 염분이 포함된 바닷물은 정수 방법이 없다. 솔라리노는 바닷물에 둘러싸인 개도국을 위해 2013년부터 기술 개발에 착수, 이 담수기를 내놨다. 가격은 20달러 정도로 조립도 쉽다는 특징이 있다.

에코피스는 본체에 태양광 패널을 붙여 자체 전력을 만들어 물의 녹조나 미세 플라스틱을 제거하는 수면 로봇 청소기를 개발했다. 하천 전 유역을 돌며 녹조 발생 패턴을 데이터화해 녹조 원인 물질인 인, 질소 등이 어디에서 유입되는지 역추적할 수 있다. 에어컨 효율을 30% 가까이 높여주는 신소재 제습제를 개발한 ‘에이올코리아’, 필터 대신 물 표면에 먼지를 흡착시키는 기술로 물만 갈아주면 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공기청정기를 내놓은 ‘공공’도 CES에서 혁신상을 받으며 기술력을 입증했다. 수도꼭지 수압에서 발생하는 동력으로 실시간 수질·수온을 측정하는 loT 장치를 선보인 ‘에스엠티’, 폭우·폭설 같은 물 재해와 건설 현장 안전에 적용되는 디지털 트윈 안전 기술을 선보인 ‘GSIL’은 각각 튀르키예 기업과 독점 판권 계약, 사우디 아람코와 계약을 맺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기후테크 가운데 물 분야의 경쟁력이 크다. OECD가 1990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별 물 산업 특허를 집계한 결과, 우리나라는 점유율에서 20.1%를 기록해 미국(23.5%)에 이은 2위를 기록했다. 윤석대 수공 사장은 “공공부문이 나서 컨설팅과 테스트베드 실증을 돕고 투자 유치와 해외 판로까지 개척하는 플랫폼 역할을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현국

◇세계 각국 물 테크에 사활

한국뿐만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는 물 테크 경쟁력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영국은 2020년부터 물 산업 분야 혁신 기술 발굴 육성을 위해 2억파운드(약 3150억원)를 투입해 펀드를 운영 중이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기후변화 적응력을 높이는 ‘수평선(horizon) 유럽’ 프로젝트에 3억6830만유로(약 5304억)의 예산을 편성했다. 공기·물과 관련한 산업을 육성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목표다.

미국 기업인 ‘제너시스 시스템’은 공기 중에서 수분을 포집해 하루 최대 380L의 물을 생산하는 ‘워터 큐브 100′이란 제품을 이번 CES에서 선보였다. 자연의 액화 과정을 흉내낸 이른바 ‘RWA(Renewable Water from Air)’ 기술이 적용됐다. 드럼통 모양의 물통에 정수 필터를 달아 수도가 없는 사막이나 숲속에서 최대 1000번까지 물을 정화해 쓸 수 있는 ‘휴대용 워터박스’를 내놓은 일본의 ‘오타(WOTA)’도 개도국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