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플랫폼 공정 경쟁 촉진법(플랫폼법)’의 규제 대상과 기준을 놓고 당국과 업계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규제 목표도 불분명하고, 규제 기준도 모호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막대한 빅테크에 대해 규제의 새 기준을 제시한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에선 ‘공룡’ 플랫폼의 등장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타이밍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의 오픈AI, 앤스로픽 등 AI 스타트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번 조사를 통해 빅테크의 AI 스타트업 투자가 AI 기술의 경쟁 구도를 왜곡시키거나 경쟁법 위반 사항이 없는지를 살펴본다. 앞서 이달 초에는 유럽연합(EU)이 MS의 오픈AI 투자에 대한 반(反)독점법 조사를 예고했다.

그래픽=양진경

◇이미 칼 빼든 미국과 유럽

미국에서 빅테크에 대한 지배적 사업자 지위에 대한 규제를 주도하는 인물은 리나 칸 FTC 위원장이다. 그는 2017년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아마존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가격을 낮춰 경쟁 상대를 위협하고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독점하는 새로운 행태를 보인다”며 “플랫폼 경제에서 독점의 정의를 새로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자 이익을 침해하지 않았더라도 소비자 독점의 단계에서부터 견제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칸 위원장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것은 아마존이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 ‘플라이 휠(fly wheel)’이었다. 사업 초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소비자를 끌어들인 뒤 이후 날개가 돌아가듯 거대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시장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아마존에 의해 점령당한다’는 뜻의 신조어 ‘아마존드(Amazonned)’까지 등장했다. 아마존이 동영상 서비스(OTT), 물류 대행 서비스 등 각종 사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기존 시장 질서가 파괴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근거다. FTC는 결국 지난달 말 아마존을 상대로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고 여기에 17개 주가 동참했다.

유럽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로 빅테크 규제에 나선다. 이미 미국과 유럽은 2020년대에 들어 빅테크에 끊임없이 독점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앞서 미 하원은 2020년 독점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한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빅테크를 압박하기도 했다.

◇점유율로만 시장 지배적 사업자?

국내에선 오프라인 중심 경제 시스템 시절의 규제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50% 이상 또는 3개 이하 사업자의 시장점유율 합계 75% 이상’이면 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업계와 학계에서는 “플랫폼이 생기지 않았던 1999년에 만든 기준”이라며 “특히 한번 성장 가속도가 붙으면 점유율이 폭발 성장하는 플랫폼을 ‘숫자’로 규제한다는 게 맞는지 의문스럽다”는 반박이 나온다.

그래픽=양진경

기존에는 독과점 기업들로 인해 소비자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괜찮다는 ‘소비자 후생’ 중심의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플랫폼 기업들은 소비자 가격을 여전히 낮게 유지하면서도 ‘소비자 독점’을 무기로 산업 전반의 생태계를 흔들어 놓을 수 있어 각별한 경계가 필요하다. 이미 일각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저렴한 가격과 편리성을 내세워 소상공인에게 불리한 거래를 강요하는 사례가 넘친다”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진행되는 플랫폼 규제 대상으로 네이버·구글과 애플·메타 등에다 쿠팡과 배민의 포함 여부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쿠팡은 가격 경쟁력을 내세워 확보한 자사 회원들을 대상으로 쿠팡플레이(OTT)를 무료 제공하거나 쿠팡이츠(배달앱) 할인 혜택을 주면서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플랫폼법의 골자는 플랫폼사의 매출액과 시장 점유율, 이용자 규모 등을 기준으로 ‘시장 지배적 사업자’를 미리 지정해 신속한 규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지정된 기업이 자사 우대, 끼워 팔기 금지와 같은 규제를 위반했을 땐 관련 매출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방식 등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드(Amazonned)

’아마존에 의해 점령당한다’는 뜻의 신조어로,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이 각종 사업에 공격적으로 진출하면서 기존 시장 질서가 파괴되는 현상. 온라인 서점으로 시작한 아마존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물류 대행 서비스 등에 잇따라 진출해 장악해가고 있다.

☞플라이휠(fly wheel)

한쪽 방향으로 힘을 가해 원판을 회전시키면 관성으로 계속 돌아가며 에너지를 축적하는 플라이휠에서 착안한 개념. 서서히 축적된 성과가 누적돼 다음 단계 도약의 동력이 되는 선순환 고리를 뜻한다. 빅테크들이 이 개념을 받아들여 사업 초기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가격을 낮춰 소비자를 모으고 다시 입점하는 판매자를 늘리면서 점유율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