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1심 판결로 ‘사법 리스크’에서 한숨 돌리게 된 삼성과 이재용 회장이 풀어야 할 과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7년간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는 노력과 대형 인수·합병(M&A)이 주춤했고, 내부 직원들의 사기도 떨어졌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삼성이 치열한 글로벌 경쟁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대곤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젠슨 황의 엔비디아,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마크 저커버그의 메타처럼 최근 테크 업계에서는 구심점을 가진 오너 경영이 힘을 발휘하고 있다”면서 “시시각각 변하는 경쟁 상황과 시장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하려면 짧은 의사 결정 구조와 실행력이 필수”라고 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른 빅테크 CEO들은 세계를 누비며 파트너와 고객들을 찾고 있다”면서 “그룹 컨트롤타워의 복원 등을 통해 이 회장이 전면에 나서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질 것”이라고 했다.

김정호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흐름을 잠시만 놓쳐도 바로 경쟁력을 잃을 수 있는 시대”라며 “경영진이 영원한 1등은 없고, 언제든지 2등이 될 수 있다는 도전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고 회사 문화도 이에 맞게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형 M&A와 공격적인 인재 확보, 대규모 투자, 기업 문화 개선 등을 삼성의 우선 과제로 꼽는 전문가가 많았다. 삼성은 2017년 하만을 인수한 뒤 의미 있는 M&A를 진행하지 못했다. 삼성 내부에서는 M&A 대상 기업들의 몸값이 치솟고, 세계 각국이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까다로운 기준을 들이대는 상황에서 이를 돌파할 과감한 리더십이 없는 것을 한계로 꼽아왔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 학회장은 “임기가 정해진 전문경영인의 경우 단기적인 성과에 집중하기 때문에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M&A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빅테크가 클라우드, 인공지능 같은 새로운 분야가 등장해도 계속 흐름을 주도하는 것은 가능성 높은 스타트업과 경쟁 기업을 끊임없이 M&A 하며 인력과 기술을 흡수해왔기 때문”이라며 “삼성도 이런 전략을 활용해야 한다”고 했다. M&A 과정에서 반도체, 스마트폰 같은 기존 사업 분야 확장보다는 전혀 새로운 분야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는 조언도 있었다. 이정동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은 (반도체처럼) 알려진 로드맵에서 더 선두에 서고자 하는 노력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한다”며 “알려진 로드맵 속에서는 이제 한국이 우위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박재근 학회장은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위탁 생산)를 같이하는 삼성은 TSMC 같은 경쟁사보다 더 다양한 분야의 우수 인력이 필요한 구조”면서 “경쟁사가 앞서나가는 분야의 인력을 해외에서 확보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임형규 전 삼성전자 사장도 “세계를 선도할 강력한 기술팀을 꾸릴 수 있는 비결은 우수한 인력 확보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