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139만원인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습기가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1월 말 내놓은 신개념 정수 가습기 ‘LG 퓨리케어 오브제컬렉션 하이드로타워’가 출시 50일 만에 누적 판매량 1만대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싸게는 5만원 안팎에 살 수 있는 일반 가습기보다 최대 28배나 비싼데도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이 제품은 끓인 물을 다시 청정 필터로 거르는 기술로 가습기 위생 문제를 대폭 개선했다. LG전자 관계자는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에 회사에서도 평가가 좋다”면서 “비싸더라도 살 만한 제품이면 소비자들이 흔쾌히 지갑을 연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했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가전 시장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 역설적으로 초(超)고가 가전제품이 인기를 끄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소비자들 사이에 ‘이왕 살 때 좋은 제품으로 사자’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가전 업계는 이들을 겨냥한 신제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삼성-LG, 초고가 시장서 한판 승부

삼성전자는 올해 프리미엄 브랜드인 비스포크 인피니트 라인의 제품군을 확대할 예정이다. 삼성이 작년 내놓은 1260만원짜리 시스템 에어컨, 600만원짜리 와인 냉장고, 229만원짜리 인덕션이 모두 인피니트 라인이다. 메탈처럼 고급스러운 소재로 디자인을 차별화한 것은 물론 혁신 기술을 집약했다. 예컨대 와인 냉장고는 와인 종류별로 최저 3도부터 최고 18도까지 맞춤형 온도 설정이 가능하고 와인의 맛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도록 초저진동 기능을 탑재했다.

LG전자는 고객의 페인포인트(Pain Point·불편함을 느끼는 부분)를 해결해주는 기술을 ‘시그니처’ 라인에 적용하며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미국에서 워시콤보라는 명칭으로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세탁건조기를 다음 달 시그니처 라인으로 출시할 예정이다. 대용량 드럼 세탁기와 인버터 히트 펌프 방식 건조기 기능을 일체형으로 구현해 세탁이 끝난 후 건조를 위해 빨랫감을 건조기로 옮길 필요가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가격은 600만원대로 책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 내부에선 이 제품이 올해 LG전자 가전 부문 성장에 가장 많이 기여할 모델로 기대하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초프리미엄 제품에서 시장 반응을 본 뒤 일반 제품에 일부 기능을 추가하면서 전반적인 제품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고 했다.

◇TV, 클수록 잘 팔린다

비싼 제품이 오히려 잘 팔린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는 TV다. 지난해 세계 TV 출하량은 1억9500만대로 2010년 이후 13년 만에 처음으로 2억대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시장조사 업체 디스플레이서플라이체인컨설턴트(DSCC)에 따르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를 비롯해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 TV, 마이크로 LED TV 등 이른바 ‘비싼’ 프리미엄 TV는 2027년까지 연평균 10%씩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작년 삼성전자 TV의 프리미엄 라인인 네오 QLED 및 QLED TV 판매량을 살펴보면 3대 중 1대 이상이 85인치 이상의 대형 TV였다. LG전자도 OLED TV 매출 중 70인치 이상의 비율이 2020년 16.9%에서 2021년 21.4%, 2022년 22.4%, 2023년(3분기 누적) 27.1%로 매년 크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업계 관계자는 “TV를 들이는 가구는 줄고 있지만 구매 시에 보다 크고 좋은 TV를 선호하는 수요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프리미엄 TV 신제품 라인업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4K의 4배인 98인치 네오 QLED 8K를 4990만원에, LG전자는 전원을 제외한 전선을 없앤 97인치 ‘시그니처 올레드 M’ TV를 4390만원에 출시했다.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박람회 CES 2024에서 두 기업이 선보인 투명 마이크로 LED, 투명 OLED TV는 상품화가 되면 수천만 원을 호가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