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모바일 반도체 설계 시장의 절대 강자인 ARM과 동맹을 강화하고 차세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시장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삼성전자는 ARM의 차세대 반도체 설계 기술을 삼성이 보유한 최첨단 공정 기술에 결합해 최적화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ARM은 스마트폰의 ‘두뇌’에 해당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설계 핵심 기술을 보유한 회사로, 대부분의 스마트폰 회사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회사)가 ARM에 로열티를 내고 반도체를 만든다. 삼성전자는 이번 협력을 통해 자사 반도체 파운드리 사업 고객을 대거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래픽=양진경

삼성전자가 ARM과 동맹을 강화한 것은 차세대 파운드리 공정 기술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AI) 개발 붐으로 오픈AI·구글·메타 등 빅테크들이 잇따라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 빅테크들을 고객으로 유치하는 파운드리 업체가 미래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만 TSMC가 현재 최첨단인 3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에서 앞서 나가는 가운데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에서 역전을 노리고 있다. 여기에 왕년의 반도체 제국 인텔도 2021년 파운드리 사업에 재진출하며 올해 세계 최초의 2나노 양산에 도전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작년 73억9000만달러(약 9조7500억원)였던 3나노 이하 파운드리 시장 규모는 연평균 64.8% 성장해 2026년 330억7000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삼성 “2나노에선 압도할 것”

삼성전자는 2022년 차세대 공정 기술로 꼽히는 ‘GAA(Gate All Around)’를 적용한 세계 최초의 3나노 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 GAA는 공정 미세화에 따른 반도체 성능 저하를 극복하고 데이터 처리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이는 신기술이다. GAA를 파운드리에 적용한 곳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하지만 현재 3나노 시장에서는 기존 공정을 개량해 3나노를 생산하는 TSMC가 수율과 수주 실적 모두에서 삼성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나노 공정부터는 판이 달라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존 공정의 한계가 3나노라는 것이 반도체 업계의 판단이고, 2나노부터는 TSMC도 GAA를 적용할 계획”이라며 “GAA를 먼저 도입해 노하우를 쌓은 삼성전자가 차세대 시장에서는 유리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픽=양진경

현재 삼성전자는 2025년으로 예정된 2나노 양산을 대비한 고객사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최근 일본 최대 AI 반도체 스타트업 PFN의 2나노 반도체를 수주하는 성과도 거뒀다. PFN은 도요타, 화낙, 히타치 등 일본 제조 업체들이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 퀄컴도 차세대 모바일 AP 생산을 위해 삼성에 시제품 제작을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 사장은 지난해 카이스트 강연에서 “삼성전자는 냉정하게 TSMC보다 4나노 기술력은 2년, 3나노는 1년이 뒤졌다”면서도 “2나노에서는 삼성전자가 앞설 수 있고, 5년 내에 TSMC를 따라잡을 것”이라고 했다.

◇치열해진 각국 파운드리 경쟁

TSMC도 2나노 공정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며, 삼성전자의 추격을 막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TSMC는 대만 북부 신주과학단지와 남부 가오슝에 2나노 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미 애플과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사의 차세대 제품 수주에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텔은 21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처음으로 파운드리 관련 행사를 열어 사업 계획을 공개한다. 이 행사에는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 장관,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 러네이 하스 ARM CEO 등이 참석한다. 업계에서는 팻 겔싱어 인텔 CEO가 이 자리에서 2나노 양산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인텔은 지난해 말 2나노 공정에 필수적인 ASML의 차세대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하이-NA EUV’를 세계 최초로 확보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시장의 큰손인 빅테크들은 항상 가장 앞선 공정의 반도체를 우선적으로 채택한다”면서 “2나노 공정이 향후 파운드리 시장의 판도를 가를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