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가 2024년 2월 21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인텔의 전략을 이야기하고 있다./AP 연합뉴스

“무어의 법칙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새너제이 매케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IFS(인텔 파운드리 서비스) 다이렉트 커넥트’ 행사 무대에 선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 창업자이자 반도체 업계의 전설 고든 무어 얘기를 꺼냈다. 오늘날 반도체 산업을 만들어낸 선구자 무어를 통해 인텔의 존재감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인텔은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분야 리더십을 재건할 것”이라며 “우리가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발표했을 때 ‘성공할 리 없다’는 반응도 많았지만, 그 불신을 하나씩 뒤엎는 중”이라고 했다. 겔싱어는 “우리는 결국 모든 종류의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제조하고야 말 것”이라고 자신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반도체 리더십의 상징인 무어의 법칙을 이어가겠다는 것은 기술적 돌파뿐 아니라 미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이중적 의미로 읽힌다”고 말했다.

현재 고성능 AI 반도체를 만들 수 있는 파운드리 업체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둘뿐이다. 겔싱어는 이 시장을 초미세 공정 혁신으로 돌파하겠다고 했다. 이날 겔싱어는 2027년 1.4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 양산을 시작한다는 구체적 청사진을 공개했다. 2027년 1.4나노미터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인 삼성전자와 TSMC와 3년이면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픽=양인성

◇반도체로 뭉친 ‘아메리카 원 팀’

인텔 행사장은 ‘미국 반도체 부흥’을 향한 열기로 가득 찼다. 한 참가자는 “원래 400~500명 정도 모일 것으로 예상한 행사에 1000명 넘게 참가했다”며 “인텔의 행보에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관심이 쏠린 것”이라고 했다.

이날 가장 주목받은 이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였다. 나델라는 영상을 통해 “MS는 미국에서 강력한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인텔의 노력을 적극 돕겠다”며 “인텔의 18A(옹스트롬) 공정으로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했다. 18A은 1.8나노미터에 해당하는 초미세 반도체 제조 공정이다. PC 대중화 시대를 연 ‘윈텔(MS 윈도+인텔) 연합’이 AI 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 생산의 협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인텔은 “MS를 비롯한 대형 고객사에서 150억달러(약 20조원)에 이르는 주문을 확보했다”고 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초미세 공정에 쓰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사용해본 적이 없는 인텔이 대규모 수주에 성공한 것은 ‘미국 기업 밀어주기 덕분’”이라고 말한다. 까다로운 EUV 장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경우 수율(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이 낮아 제때 납품받지 못할 위험이 높다. 하지만 MS를 비롯한 미국 기업들이 인텔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꺼이 손잡았다는 것이다.

◇러몬도 “반도체 지원법 2도 당연”

이날 행사에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인텔은 미국의 으뜸가는 반도체 기업”이라며 치켜세웠다. 러몬도 장관은 이날 ‘곧 큰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텔과 협상하고 있는 100억달러(약 13조3000억원) 이상의 메가톤급 반도체 지원금 지급이 조만간 이뤄진다는 뜻이다. 겔싱어가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구축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 지원법(칩스법)을 잇는 ‘칩스법2′가 나올 수도 있는가”라고 묻자, 그는 “미국에 반도체 제조를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하다”고 했다. 행사에는 생성형 AI 시대를 주도하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인텔의 모든 (기술적) 돌파를 축하하고, 강력한 인텔의 모습을 보는 것이 기쁘다”며 “미국에서 아주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고, (인텔의 재기로) 이를 피부로 느끼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겔싱어는 올트먼에게 “우리는 많은 공장을 짓고 있으니 마음껏 AI 반도체를 찍어내라”고 했고, 올트먼은 “좋다”고 화답했다.

☞무어의 법칙

반도체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집적도)이 2년마다 2배로 늘어난다는 법칙. 인텔 공동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 잡지 ‘일렉트로닉스’에 이런 내용을 실었고 무어의 친구였던 캘리포니아공과대의 카버 미드 교수가 ‘무어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