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코끼리’로 불리는 인도가 세계 반도체 산업의 ‘허브’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고 있다.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해외 기업을 유치하면서 한꺼번에 3개의 반도체 공장 건설에 나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으로 ‘제조 강국’을 천명하던 중국의 입지가 줄어들자 인도가 중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기지개를 켜는 모양새이다. 미 CNBC는 “인도는 미국, 대만, 한국과 같은 반도체 공급망의 허브가 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인도 정부가 지난달 29일(현지 시각) 자국 내 반도체 3개 공장의 설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허브'가 되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비크람 사라바이 우주센터를 방문해 로봇을 살펴보는 모습이다. /EPA 연합뉴스

인도 정부는 지난 29일(현지 시각) “인도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생태계 개발에 따라 반도체 3개 공장의 설립을 승인했다”면서 “인도는 이미 반도체 설계에 깊은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공장을 통해 인도는 반도체 제조 능력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도 전자정보통신부 장관은 “세 공장 모두 100일 이내 건설을 시작할 것”이라면서 “인도를 세계 제조업 중심지로 만들고 일부 부문에서 자급자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고 했다.

우선 인도 대표 대기업 ‘타타그룹’ 산하 타타일렉트로닉스는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 PSMC와 함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고향인 구자라트주에 110억달러(약 14조7000억원)를 들여 월 5만장의 웨이퍼를 생산할 수 있는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이곳에서 전기자동차, 통신, 방위산업 등에 활용되는 28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 반도체를 만들 계획이다.

반도체 패키징(후공정)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타타그룹의 TSAT도 아삼주에 32억6000만달러를 들여 자동차와 가전 부문에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 타타일렉트로닉스는 “공급망 복원을 원하는 글로벌 고객의 요구 사항과 증가하는 국내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내외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인도 CG파워는 일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 태국 스타스 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함께 약 10억달러를 투자해 구자라트주에 전력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운다. 인도 정부는 “인도 반도체 산업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큰 성공을 거뒀다”면서 “이러한 공장을 통해 인도에 반도체 생태계가 구축될 것”이라고 했다. 인도는 3개의 반도체 공장 건설로 2만개의 첨단 기술 일자리와 6만개의 간접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외신들은 한꺼번에 3개의 반도체 공장 건설이 시작되는 것은 인도의 반도체 허브 정책이 제 궤도에 올랐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인도는 제조업 부문 활성화를 위해 천문학적 보조금을 앞세워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다. 반도체의 경우 인도에 공장을 지으면 해당 비용의 절반을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실제로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이미 8억2500만달러를 투입해 반도체 조립 및 시험 시설 건설에 나서며 인도의 구애에 화답했다. 또 이스라엘 타워 반도체도 인도에 9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 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중 갈등으로 인해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이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생산 공장을 분산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애플,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의 제조 공장이 있고, 공학 인재가 풍부한 인도가 반도체를 앞세워 첨단 국가의 이미지를 쌓으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