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 시각)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핸들러 남부의 인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건설 현장을 방문해 인텔 관계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우리는 40년 만에 첨단 반도체 제조업을 이곳 미국에서 부활시킬 겁니다.”

20일(현지 시각)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 남부에 있는 인텔의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건설 현장을 찾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반도체는 본래 미국의 발명품이다, 그걸 잊어선 안 된다”며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주요 경제 슬로건인 ‘인베스팅 인 아메리카(미국에 투자하라)’가 쓰인 플래카드와 성조기를 배경 삼아 연설을 시작한 바이든 대통령은 직접 인텔에 대한 195억달러(약 26조원)의 파격적인 반도체 보조금 지급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삼성전자가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보조금 60억 달러의 3배가 넘고, TSMC 50억 달러의 4배에 이른다. 이 돈으로 인텔은 올해 말 1.8나노 공정,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천문학적 보조금을 받게 된 인텔의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는 “오늘은 미국과 인텔이 반도체 제조 혁신의 위대한 장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결정적 순간”이라고 화답했다.

그래픽=김하경

미국 정부는 조만간 글로벌 파운드리 1·2위인 대만 TSMC와 삼성전자에 대한 대형 보조금 지원책도 발표한다. 이 장면을 두고 반도체 업계에선 “그동안 선언으로만 존재했던 미국의 ‘반도체 굴기’가 본격적으로 실행에 들어갔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정부 등에 업고 질주하는 인텔

미국이 인텔에 대해 당초 예상의 2배에 이르는 지원책을 발표한 것은 미국을 ‘첨단 반도체의 산실’로 만들겠다는 계획 때문이다. 인텔은 미국 기업 중에선 유일하게 TSMC·삼성전자와 2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이하 초미세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겨룰 만한 기술을 갖췄다. 인텔은 올해 말 1.8나노 공정, 2027년에는 1.4나노 공정 양산이라는 계획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2030년까지 삼성전자를 제치고 TSMC에 이어 글로벌 파운드리 2위 기업이 되겠다는 구체적 로드맵까지 세웠다. 미국 정부 역시 인텔을 중심으로 현재 10%가 안 되는 미국의 세계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2030년까지 20%로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인텔은 초미세 공정 기술을 갖췄지만, 해당 공정에 필수인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를 실제로 사용해 대량 생산을 한 경험이 전무하다. EUV는 다루기 까다로운 장비다. 이 때문에 수율(합격품 비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부가 예상을 뛰어넘는 보조금을 인텔에 주기로 한 배경엔 ‘인텔의 실패’를 전력으로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미국 정부는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인텔의 파운드리를 사용하도록 적극 장려하며 직접 인텔의 수주 물량까지 챙기고 있다. 실제로 MS는 최근 인텔의 1.8나노 공정으로 자사 차세대 AI 반도체를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보조금을 이용해 애리조나, 오하이오, 오리건, 뉴멕시코 등에 첨단 공정 생산 시설을 지을 계획이다.

◇삼성·TSMC의 첨단 시설도 미국으로

미국 정부는 보조금을 앞세워 삼성전자와 TSMC의 첨단 생산 설비도 빨아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미국에 4나노 이하 공정을, TSMC는 3나노 공정을 미국에 건설한다는 계획이다. 모두 현시점 가장 첨단으로 꼽히는 미세 공정들이다. 삼성전자와 TSMC가 각각 60억·50억달러 규모의 현금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텔·삼성전자·TSMC 3사에 대한 현금 보조금만 해도 20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 3사에 투입되는 자금이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 편성된 현금 지원금 예산(280억달러)의 70%에 달한다는 것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긴 고려 끝에 미국 정부는 큰돈을 첨단 반도체 역량을 갖춘 대형 기업에 집중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을 ‘첨단 반도체의 산실’로 탈바꿈하고,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을 미국 중심 체제로 개편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도체 지원금이 일부 기업에 집중되면서 미국에선 또 다른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지난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대담에서 “지금까지 600여 개 이상의 보조금 신청서를 접수했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들이 요구한 돈의 절반만 받아도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칩스 투’라 부르는 추가 지원법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