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판교 네이버 사옥./뉴스1

네이버가 당초 28일부터 시행하기로 한 ‘정정보도 청구 개편안’ 적용이 잠정 연기됐다. 네이버가 추진했던 개편안은 정정보도나 반론보도 등이 청구된 기사가 네이버 포털 검색에 노출될 경우 ‘정정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심의가 끝날 때까지 달기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문협회 등 언론계에서는 ‘가짜 뉴스 낙인찍기’, ‘언론중재위원회 및 법원 절차를 무시한 월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네이버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논의한 결과 시행 시기를 조정하자는 의견이 있었고, 여러 우려를 고려해 시행 시점을 총선 이후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지난 15일 정정보도 청구 개편안을 발표했다. 서면이나 등기우편으로 접수를 했던 정정보도 청구를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게끔 청구용 웹페이지를 신설하고, 당사자의 청구 접수가 이뤄진 기사에 관련 문구를 노출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존에는 기사 본문에만 표기되던 ‘정정보도 청구 중’이라는 문구를 기사를 보기 전 검색 결과 화면에도 노출되게끔 하겠다는 것이다. 네이버는 “청구 편의성 향상과 언론 보도로 인한 권리 침해 최소화를 위한 조치”라며 언론학계·법조계 인사 등 외부 전문가 7인으로 구성된 ‘네이버 뉴스혁신포럼’ 권고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청구 개편안 발표 이후 정정보도 등을 담당하는 법정 기구인 언론중재위원회의 중재나 법원 판결이 나오기도 전에 민간 기업인 네이버가 기사에 임의로 ‘딱지’를 붙여 이용자들의 기사 접근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월권 논란’이 불거졌다. 또 다음 달 10일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의혹이 제기되거나 비판 보도의 대상이 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이해 당사자가 가짜 뉴스라는 ‘낙인’을 찍기 위해 온라인 청구를 남발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한국신문협회는 지난 25일 “기사의 허위 여부와 상관없이 ‘정정 보도 청구 중’이라고 표시하는 것은 기자를 잠재적인 가해자 또는 악인으로 낙인찍고 비판·의혹 보도를 봉쇄할 수 있다”며 네이버에 즉각 철회를 요구했다. 협회는 대부분 사실인 보도 내용 중 일부를 허위 정보로 규정해 정정보도 청구 중으로 표시하는 행위 역시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양진경

네이버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포털·뉴스 정책을 발표했다가 여론에 부딪혀 물러선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11월에는 뉴스 댓글에 답글을 계속 달 수 있게 하는 기능을 도입했다가 나흘 만에 폐지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 성향이 다른 지지자 간 ‘댓글 전쟁’을 부추겨 포털 접속량(트래픽)을 늘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작년 7월 도입하기로 했던 ‘트렌드 토픽’ 기능 역시 발표 나흘 만에 도입을 철회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하루 단위 인기 키워드를 소개하는 기능이 과거 ‘드루킹 사건’ 등 여론 조작 사건들이 거듭 터지면서 사라진 ‘실시간 검색어’를 다시 부활시킨다는 지적이 나온 탓이다. 이에 대해 언론계와 IT 업계에선 “네이버가 상업적 목적으로 접속 수를 늘리기 위해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한 정책들을 내놨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면 물러나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며 “거대 플랫폼으로서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홍식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네이버가 매번 민감한 포털·뉴스 정책을 발표한 뒤 철회를 반복하는 건 접근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미리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들어 발표하고 여론을 수렴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