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넷

거대한 인공지능(AI)의 등장에 대한 경고는 일찌감치 공상과학(SF) 영화를 통해 나왔다. 1991년작 영화 ‘터미네이터2′에는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하는 군사용 AI ‘스카이넷’이 나온다. 스카이넷이 순식간에 모든 스텔스기를 무인 조종하자, 폭주를 두려워한 인간들이 시스템을 정지시키려 했다. 그러자 스카이넷은 인류를 적으로 간주해 모든 군사 방어 시설을 마비시킨 후 러시아에 핵미사일을 자동 발사한다.

영화 속 AI의 성능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했다. 2003년작 ‘터미네이터3′에 다시 등장한 스카이넷은 데이터 처리 속도와 능력에서 이전 것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스카이넷 개발 책임자인 미 공군 장성은 “초당 계산 속도가 60테라플롭스(1초에 1조번 연산)”라며 “모든 바이러스를 순식간에 찾아서 없애줄 거야”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다. 스카이넷이 인간을 향해 핵공격을 감행하지만, 주인공은 “스카이넷은 서버에 존재하는 소프트웨어라, 중단시킬 방법이 없다”며 좌절한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만 해도 인간을 위협하는 AI의 등장은 먼 미래의 일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스카이넷을 월등히 뛰어넘는 AI와 일상을 보내고 있다. 2003년 영화 개봉 당시 스카이넷 성능인 60테라플롭스는 당시 지구 최고 수퍼컴퓨터인 35테라플롭스급 ‘어스 시뮬레이터’보다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엔비디아의 그래픽카드인 RTX4090(약 80테라플롭스) 1개보다도 못하다. 현재 고성능 게임과 가상화폐 채굴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그래픽카드다.

이미 노트북용 USB 충전기 속 칩의 데이터 처리 속도만 해도 1969년 달에 착륙한 아폴로 11호 컴퓨터 성능보다 48배 빠르다. 심지어 지난 18일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물리학의 한계를 넘어 칩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공개한 새 AI 가속기 ‘GB200′은 초당 1.4엑사플롭스 연산이 가능하다. 지구를 멸망시킨 스카이넷보다 약 2만3333배 뛰어난 성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