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지난 20일 마이크로소프트(MS)와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노트북 ‘서피스 랩톱’과 ‘갤럭시북4 엣지’를 나란히 내놨다. 이들은 전작에서 채택한 인텔의 PC용 프로세서(processor) 대신 스마트폰용 프로세서로 유명한 퀄컴의 최신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X 엘리트’를 탑재했다. 에이서, 에이수스, 델, HP 등 PC 제조업체들도 퀄컴의 스냅드래곤X 엘리트를 탑재한 AI PC를 올 하반기 줄줄이 내놓을 예정이다.

‘스마트폰용 중앙처리장치(AP)’ 시장을 선도하던 퀄컴이 이제는 인텔이 꽉 잡고 있는 PC용 CPU(중앙처리장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PC에서 CPU는 정보 처리 속도와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인텔 인사이드(inside)’, 즉 인텔의 CPU가 들어있다는 것이 PC 성능을 보여주는 증거로 쓰일 만큼, PC의 CPU 시장에서 인텔은 절대 강자였다. 최근 변화의 계기는 AI PC다. 퀄컴은 자사의 스냅드래곤 X 엘리트에 대해 “온디바이스(내장형) AI를 구현하기에 최적화된 칩”이라며 “경쟁사 제품 대비 최대 2배 빠르고 전력 소모는 3분의 1에 그친다”고 말했다. 기존에 인텔이 MS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는데 AI PC 시대를 맞아 ‘퀄컴 인사이드’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까지 나올 정도다. 퀄컴이 AI PC 시장에 진출한다는 소식에 퀄컴 주가는 27일 210.36달러를 기록해 퀄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래픽=백형선

◇퀄컴, 애플 경쟁업체와 손잡아

1985년 미국의 무선 전화 통신 개발 기업으로 시작한 퀄컴은 2007년 AP 스냅드래곤을 내놓으며 모바일 시대에 정착했다. 2010년대 스마트폰 시장이 급성장할 때, AP 시장을 빠르게 장악했다. 퀄컴은 AP 시장에 머무르지 않았다. AI PC 시대가 열릴 것을 일찌감치 예견하고 2018년부터 모바일 프로세서를 개조한 ‘윈도 온 스냅드래곤’ ‘8cx’ 등 PC용 CPU를 잇따라 공개했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AI PC용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X 시리즈를 내놨고 올해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퀄컴의 스냅드래곤 X 엘리트는 초당 45조회 연산을 처리하는 NPU(신경망처리장치)를 탑재해 인터넷 연결 없이도 AI 기능을 구현하는 데 최적화돼 있다.

퀄컴의 PC 칩의 든든한 우군으로는 MS가 꼽힌다. MS는 윈도를 앞세워 PC 운영체제(OS)를 장악했다. 하지만 애플은 PC에 탑재할 수 있는 프로세서 ‘M1′을 앞세워 자체 운영체제인 맥OS의 시장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글로벌 PC OS 시장 점유율은 지난 2018년 윈도가 81.8%에 달했지만 지난해 6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반면 애플의 맥OS는 같은 기간 13%에서 19%로 훌쩍 뛰었다. 인텔의 프로세서 대신 저전력·저발열 장점과 아이폰·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와의 호환성을 극대화한 M칩을 개발한 것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인 1스마트폰 시대가 열리며 MS도 애플과 마찬가지로 모바일과 연결성이 강화된 윈도 PC·노트북을 만들고 싶었지만 인텔 칩으로는 한계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MS가 스마트폰 AP 강자 퀄컴과 손잡고 AI PC 칩 개발에 나선 것이다.

◇내장형 AI로 차량시장도 공략

퀄컴은 NPU를 기반으로 차량용 AI 반도체 시장에도 도전하고 있다. 지난 1일 퀄컴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에 따르면 퀄컴의 매출은 93억8900만달러, 영업이익은 23억2600만달러로 영업이익은 전년(17억달러) 대비 37%나 늘었다. 영업이익 증가 배경엔 오토모티브 부문이 있다. 오토모티브는 6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35% 성장한 수치다.

실제 퀄컴은 올해 들어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적극 확대하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전자·IT 전시회 CES와 2월 열린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전시회 MWC에서 잇따라 스냅드래곤 기반의 생성 AI 자동차 플랫폼 ‘스냅드래곤 디지털 섀시’를 선보였다. 인포테인먼트, 디지털 콕핏, 자율주행 등이 포함돼 일반 AI 및 생성형 AI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크리스티아누 아몽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다양한 제품군에서 온디바이스 AI를 구현해나가고 있다”며 “오토모티브와 PC 등 지속적인 성장과 제품군 다각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CPU와 AP

‘Central Processing Unit’의 약자인 CPU는 컴퓨터에서 기억, 해석, 연산, 제어라는 4대 주요 기능을 관할하는 중앙처리장치를 말한다. 현재 CPU 시장은 인텔과 AMD가 양분하고 있다. CPU와 GPU(그래픽처리장치), NPU(신경망처리장치) 등을 합쳐 인간의 뇌 같은 역할을 하도록 만든 것이 컴퓨터 프로세서다. 인텔의 코어울트라7, 애플의 M3 등이 유명하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중앙처리장치는 AP(Application Processor)로 불리는데, 스마트폰에 탑재된 앱을 실행시키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