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미국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열린 'WWDC'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애플의 ‘인공지능(AI)’ 시대가 공식적으로 개막했다. 10일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열린 연례 개발자 행사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40분을 할애해 ‘애플 인텔리전스’라고 불리는 AI신기능을 집중 소개하고, 시중에 떠돌던 오픈AI와의 협업도 공식화한 것이다. 그 동안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메타 등에 비해 AI도입이 늦어져 ‘AI지각생’ 평가를 받아온 애플이 적극적인 판 뒤집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오늘 여러분께 당신 손 안에 있는 개인 지능 시스템(personal intelligence system)을 보여줄 것이며, 이는 출시와 함께 획기적인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며 ‘애플 인텔리전스’를 공개하자, 현장 수천명의 참자가들 사이에선 박수가 터져나왔다. 애플은 앞으로 아이폰·아이패드·맥북·애플워치 등 애플 기기에서 구동되는 모든 AI기능을 이 이름으로 브랜딩하고, 가지수를 늘려가겠다는 전략이다.

◇하드웨어 제어의 신세계 보여준 애플

10일 미국 쿠퍼티노에서 열린 애플 WWDC 현장./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애플이 공개한 애플 인텔리전스 신기능의 대부분은 기기 내에서 자체 구현할 수 있는 ‘온디바이스 AI’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은 받은 것은 단연코 음성AI ‘시리’다. 크레이그 페더리기 애풀 수석 부사장은 “시리가 단순 ‘음성 AI’가 아닌 ‘디바이스 AI’로 진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애플이 자체 개발한 매개변수 30억개 수준의 소규모 언어 모델을 바탕으로, 사용자가 스마트폰·패드·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제어할 수 있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이날 애플이 공개한 시연 영상에서 시리는 “스테이시가 뉴욕에서 핑크 코트 입고 찍은 사진을 찾아줄래?”라는 질문에 사진첩에서 정확한 사진을 찾아내는 모습을 보여줬다.여기 까지는 구글과 MS가 지난 5월 내놨던 AI기능과 흡사하다. 하지만 애플은 여기서 더 나아가 “그 사진을 스테이시의 연락처 프로필로 정해줘”라는 지문을 AI가 자동으로 수행하게 만들었다. “장노출로 사진을 찍고 싶은데, 그 모드로 카메라를 실행해줄래”라고 하면 복잡한 카메라 설정을 단번에 맞춰주기도 한다. “문자를 오늘 써서 내일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라고 질문을 하면 사용법을 순서대로 읊어주기도 했다. 사실상 IT기기를 잘 사용하는데 필요한 공부와 노력이 필요없도록 한 것이다. 행사를 지켜보던 현지 엔지니어는 “애플이 해체시킨 애플카에서 연구하던 기기 제어 기술이 시리로 많이 적용된 것 같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라는 개인 기기의 정보를 꿰뚫고 있는 시리는 무엇보다 개인화된 ‘AI비서’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엄마가 언제 공항에 도착하더라?”라고 물으면 스마트폰 문자 앱에서 엄마가 보냈던 비행편 스크린샷을 기억해 내 정확한 도착 시간을 알려주고, “그러려면 언제 출발해야지?”라고 했을땐 지도 앱을 통해 소요 시간을 계산해주는 식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모두 ‘AI비서’ 경쟁에 뛰어든 가운데, 애플은 하드웨어 기기 내 저장된 정보들을 무기 삼아 참전한 것이다. 페더리기 수석 부사장은 “올해는 시리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박수세례를 받은 또 다른 기능은 ‘젠모지(Genmoji)’라고 부르는 이모티콘 생성 기능이다. 애플의 문자앱에서 온디바이스로 사용할 수 있는 이 앱은 사용자의 간단한 설명이나 문자 내용을 바탕으로 보드를 타고 있는 공룡, 연어 베이글 샌드위치 같은 이모티콘을 실시간으로 생성해준다.

아이패드에서 AI가 수기로 쓰여진 수학 문제를 푸는 계산기 신기능을 시연하는 영상./오로라 특파원

아이패드에는 AI가 접목된 새로운 계산기 앱이 도입됐다. 애플펜슬을 이용해 복잡한 수식을 손을 써넣으면, AI가 이를 인식해 바로 계산해주는 것이다. 이 뿐이 아니다. 탁구공의 궤도를 계산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넣고, 계산에 필요한 수치를 표시하기만 하면 원하는 결과값을 계산해주고 정교한 그래프를 그려줄 수도 있다. 메모·이메일 앱에서 쓴 글을 AI가 자동으로 수정해주고, 사진첩에서 불필요한 배경 인물을 지우는 AI 기능도 새롭게 도입된다.

◇애플, GPT 품었지만…오픈AI 존재감 ‘최소화’

10일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열린 WWDC에 참석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애플이 행사 말미에 시리에 오픈AI의 최신 AI모델인 GPT-4o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사실상 시리가 대답하지 못하는 내용에 대한 ‘보완책’으로 오픈AI의 기술이 도입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예컨대 시리에 복잡한 질문을 물었을 때, 시리가 자체적으로 답변을 못할 경우 “’GPT-4o’에서 답변을 구할까요”라는 선택지가 나오게 된다. 애플의 기기에 챗GPT가 기본 탑재된다는 뜻이다. 애플 측은 “애플 기기에서 챗GPT를 사용할땐 따로 계정을 만들 필요가 없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날 행사에선 오픈AI의 존재감이 크진 않았다.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현장을 찾아 2시간 가깝게 이어진 기조연설을 모두 보고 떠났지만, 그가 직접 무대에 올라서서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행사를 지켜본 개발자들 사이에선 “애플이 의도적으로 오픈AI에 쏠리는 이목을 최대한 제한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10일 애플 WWDC 기조연설 참석 후 떠나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개발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오로라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