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가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에 등극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애플·구글 등 주요 빅테크들도 AI에 집중하면서, ‘AI 랠리(상승세)’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미국 뉴욕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배경에도 AI 산업이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엔비디아를 비롯한 일부를 제외하고, 지난해 큰 기대감을 받고 급등했던 AI 관련 주식들 중 다수가 올해 들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소수 AI 기업이 전체 증시를 끌어 올리는 ‘착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AI 기업들이 납득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자들이 더 이상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 열풍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결국 성과가 저조하면 (거품은) 터질 것”이라고 했다.

◇올 들어 힘 못 쓰는 ‘수혜주’들

기업용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세일즈포스는 지난해 AI 수혜주로 주목을 받았지만 올 들어 주가가 크게 떨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세일즈포스는 지난 1분기 매출 91억3000만달러(약 12조6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전망치(91억7000만달러)에 못 미치는 실적이었다. 더구나 2분기 전망치도 예상보다 낮았다. 그러자 실적 발표 다음 날 세일즈포스의 주가는 하루 만에 20% 폭락했다. 이는 2004년 이후 회사가 겪은 최악의 주가 하락이었었다. 세일즈포스는 AI를 자사 주요 제품인 고객 관리 시스템(CRM)에 도입해 매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주가가 100% 가깝게 올랐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오히려 작년 말 대비 9.5% 하락하며 주춤하고 있다.

그래픽=양진경

포토샵 등 소프트웨어로 유명한 어도비 역시 자사 제품에 AI를 접목하겠다고 발표하며 지난 한 해 주가가 68% 상승했다. 그러나 올 2월 오픈AI가 동영상 생성 AI인 ‘소라’를 발표한 직후 주가가 7.41% 큰 폭으로 하락했다. 어도비의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이 영향을 미쳤다. 어도비의 주가는 이달 초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실적을 발표하며 반등했지만, 현재 주가는 연초 대비 여전히 10% 가깝게 떨어져 있다.

클라우드 플랫폼 업체인 스노플레이크, AI 반도체 생산 계획을 밝힌 인텔, AI 의사결정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베어.ai 등은 모두 올 들어 주가가 30% 이상 크게 떨어졌다. FT는 “시티은행이 지난해 유망한 AI 기업을 선별한 이른바 ‘AI 위너 바스켓(AI winners basket)’ 종목 중에서 올 들어 주가가 하락한 곳이 절반”이라며 “지난해 이 기업들 중 4분의 3이 주가가 상승했던 것과 대조된다”고 했다.

◇닷컴 버블, 재현될까

AI 관련 기업의 주가가 주춤하자, 시장에선 지금의 AI 열풍이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제대로 매출을 내는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맹목적인 투자금만 쏠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닷컴 버블 당시 투자금을 흡수한 수많은 기업이 결국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사람의 삶을 바꾼 ‘진짜 혁신’을 이룬 일부 기업들만 살아 남아 오늘날의 빅테크가 됐다.

테크 업계에선 이를 기술 변혁의 순간마다 반복되는 사이클로 보고 있다. 올 들어 주가가 떨어진 AI 수혜주들의 공통점은 모두 분기 매출이 시장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거나, 신규 투자를 유인할 새로운 AI 비전을 제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서치 어필리에이트의 롭 아노 회장은 “대형 플레이어가 어려움을 겪기 전에 보다 작은 플레이어들이 사라지는 모습”이라고 했다.

현재 구글·메타 등 빅테크를 포함한 소프트웨어 기업 중 AI로 돈을 버는 기업은 아직 없다. 승자가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빅테크들은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 투자금을 쏟고 있다. 향후 AI 제품으로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오늘날의 빅테크도 실적 타격과 주가 하락을 면치 못한다는 것이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AI 산업을 하나의 나무로 비유하면 지금은 겨우 싹이 튼 단계”라며 “과거 구글·페이스북 등이 나타나듯 AI 시대를 장악할 주인공들이 나오며 산업이 성숙해질 때까지 AI 분야에서도 많은 기업이 반짝 떴다가 지는 것을 반복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