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메모리 빅3사가 ‘범용 D램 딜레마’에 빠졌다. HBM 생산량을 늘리다보니 범용 D램 생산능력이 반대로 줄어들어 팹 생산능력 안에서 이를 조절하는 것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하반기부터 범용 D램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며, 메모리3사가 지난해 반도체 불황으로 줄였던 D램 설비투자까지 다시 늘릴 수도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 /SK하이닉스

HBM은 D램의 일종이면서도 다이(D램을 쌓는 판) 크기가 기존 D램보다 크기 때문에 생산설비가 최대 3배 가까이 더 필요하다. 이 때문에 HBM 생산에 공정을 할당할 수록, 범용 D램 생산량은 줄어들게 된다. 범용 D램은 주문자 맞춤 생산방식이 아닌, 모바일이나 PC에 흔히 쓰이는 제품을 말한다. 최근 반도체 불황 당시 쌓인 재고가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어 가격도 오르는 추세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PC용 D램 범용제품(DDR4 8Gb)의 지난달 현물가격은 2.1달러. 지난 1월의 1.8달러에서 16.6% 상승한 수치다. 서버용 D램 제품 가격도 최대 19% 올랐다.

대만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메모리 3사가 감산에 돌입하기 전인 2022년 3분기 웨이퍼 인풋(투입량) 총합은 141만5000장이었다. 하지만 불황으로 감산에 돌입하면서 지난해 3분기 107만8000장까지 줄어들었고, 올해 146만5000장으로 회복할 전망이다. 그러나 이들 3사가 HBM 생산능력을 끌어올린 것을 감안하면 HBM을 제외한 D램 웨이퍼 투입량은 120만장으로 오히려 지난해 1분기 125만6000장보다 줄어든 것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IT 분야 D램 수요가 살아나는 상황에서 HBM을 무리하게 많이 생산하다보면 D램 공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그간 다운턴으로 인해 쌓인 D램 재고가 정상화(소진)되고 있는 과정”이라며 “상황을 보고 D램 캐파를 늘릴 수도 있으나 현재로서는 모든 메모리 업체들이 HBM 캐파늘리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했다.

삼성증권은 “2025년 D램 수요가 20% 성장하고, 생산 성장률이 10% 초반 이내로 제약된다면 2025년 하반기부터 재고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했다. 메모리 3사가 HBM과 범용 D램 생산 배분을 효율화하려는 노력을 계속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HBM 수율을 높여서 D램 수요를 줄이는 방법도 있으나, 기술 난이도를 고려 시 급속도로 이를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