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현국·미드저니

최근 오픈AI·메타·마이크로소프트(MS) 등 글로벌 빅테크들이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AI) 모델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사람과 자연스럽게 대화하고, 일상의 업무를 대신할 ‘AI 비서’가 곧 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당장에라도 인간의 삶을 바꿀 것처럼 ‘장밋빛 미래’를 예고했던 AI 서비스들이 내부 품질 문제나 규제 등으로 출시가 잇따라 연기되고 있다.

◇섣부른 공개와 미진한 품질

지난달 세계 최고 성능의 AI 모델을 공개한 미국의 오픈AI는 25일 공식 X(옛 트위터) 계정을 통해 “지난 5월 시연한 ‘음성 모드’를 6월 말부터 소수 유료 고객을 대상으로 출시할 계획이었으나, 한 달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회사는 “가을에는 모든 유료 고객이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면서 “다만 정확한 출시 일정은 (음성 모드가) 높은 안전성과 신뢰성 기준을 충족하는 데 달렸다”는 조건을 달았다. 사실상 실제 출시일이 계속해서 미뤄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둔 것이다.

오픈AI의 ‘음성 모드’는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속도로 복잡한 문답을 이어가고, 카메라를 통해 사용자의 주변 세상을 인식하는 등 ‘차세대 AI 비서’로 주목받았다. 이날 회사는 출시 지연 이유에 대해 “특정 콘텐츠를 감지하고 거부하는 기능을 개선 중”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AI는 허위 정보를 만들고, 인종·성차별적 콘텐츠를 대거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감정을 모방하는 챗봇은 사람과의 복잡한 상호작용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들에 부딪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오픈AI의 ‘음성 모드’가 인간과 교류하는 도중 예상치 못한 문제 발언들을 하는 오류를 출시 기간이 다가오도록 바로잡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래픽=김현국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는 자사 AI PC인 ‘코파일럿+(플러스) PC’의 핵심 기능으로 꼽힌 ‘리콜’의 출시를 중단했다. 이용자의 PC 화면을 모두 기록하는 AI의 데이터가 제대로 암호화되지 않아 대형 보안 사고를 낼 수 있다는 비판이 커지면서다.

전문가들은 “AI를 공개했다가 오류로 낭패를 본 사례가 많아지며 AI 제품 출시 기조가 ‘최대한 빨리’에서 ‘안전한 공개’로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지난달 야심 차게 검색에 AI를 도입한 구글은 AI가 사실이 아닌 것을 진실이라 믿는 이른바 ‘환각 현상’ 때문에 엉뚱한 답변을 내놓자 AI 검색 결과 노출 빈도를 축소했다. 지난 2월엔 ‘흑인 조선 시대 무관’ ‘여성 교황’ 같은 현실과 맞지 않는 이미지를 생성한 AI 기능을 일시 사용 중단하기도 했다. AI가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구글 주가는 큰 폭으로 하락했다.

그래픽=김현국

◇높은 빅테크 규제의 벽

성능 문제 외에 빅테크를 겨냥한 규제로 AI 서비스 출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애플이다. 애플은 유럽의 강력한 반독점법 ‘디지털시장법(DMA)’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이달 초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공개한 ‘애플 인텔리전스’의 유럽 지역 출시를 보류한다고 밝혔다. DMA는 빅테크의 시장 독점을 막기 위해 각기 다른 회사 서비스 간 호환성을 갖추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법을 따르다간 자사 기술이 타사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중국에서도 중국 당국에 AI 모델 출시 허가를 받기 전까진 애플 인텔리전스를 내놓지 못한다. 애플의 ‘AI 전성기’를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애플 인텔리전스가 애플의 주요 시장인 유럽과 중국에서 모두 출시가 미뤄지면서, 단시간에 AI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졌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도 유럽의 강력한 개인 정보 수집 규제를 이유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와츠앱 등에 탑재한 자사 챗봇 ‘메타AI’의 유럽 출시를 보류하기로 했다. 테크 업계에선 “그동안 기업들이 AI 주도권을 잡겠다며 경쟁하듯 AI 기능을 내놨지만, 실제 실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부메랑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앞으로 AI 개발의 트렌드도 바뀌어 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빅테크들은 지금까지 ‘더 크고 더 빠른’ AI를 개발하며 기술력 경쟁에 모든 자원을 쏟았다. 앞으로는 개발 비용이 적게 들고, 문제도 적은 ‘작은 모델’을 앞세워 수익을 내는 데 집중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5일 디인포메이션은 “(AI 기업들의 주요 수익원이 되어줄) 기업 고객들은 가장 빠르고 진보된 모델을 찾는 것이 아닌,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인 AI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