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유럽과 달리 국내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 한국은 3년 전 빅테크 규제 첫발을 뗐지만 그 이후 한 걸음도 나가질 못했다.

2021년 구글이 모든 콘텐츠에 인앱결제(앱에서 유료 콘텐츠를 결제할 때 구글·애플의 앱 장터에서만 결제하는 방식)를 의무화하고 수수료를 15%에서 30%로 인상하겠다고 밝히자 한국은 이듬해 8월 인앱결제 강제를 막기 위한 법안을 세계 최초로 통과시켰다. 일명 ‘구글 갑질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이 법은 해외에서도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그 후 2년이 지나도록 애플과 구글에 대한 제재 결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같은 사안에 대해 한국보다 뒤늦게 행동에 나선 EU가 애플의 인앱결제 방식을 독과점으로 판단한 것과 대비된다.

한국에서 빅테크 규제가 지지부진한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를 꼽는 시각이 있다. 국내에서도 DMA처럼 테크, 플랫폼 업계에서 지배적 사업자를 지정해 통제하는 법안을 추진해왔다. 이들이 자사 우대, 끼워 팔기 등 4가지 금지 사항을 위반할 경우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매기는 것이 골자다. 이에 대해 지난 1월 미국 상공회의소는 “(플랫폼법이) 외국 기업을 임의로 겨냥해 정부 간 무역 합의를 위반하게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 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에서도 반대 의견을 발표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그 후 공정거래위원회가 주도하던 플랫폼법 입법에 대한 논의가 그쳤다. 유튜브나 넷플릭스처럼 막대한 데이터를 사용하는 콘텐츠 기업에 망 이용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입법이 국회에서 논의되자,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 정부에 수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이 법안 역시 폐기 수순을 밟고 있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미국과의 관계는 플랫폼뿐 아니라 반도체·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도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말했다.

토종 플랫폼이나 테크 기업이 없는 EU와 한국의 상황이 다르다는 점도 작용한다. 빅테크를 규제하는 법안이 한국 기업인 네이버, 카카오 등에도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국내 업계에서도 이를 마냥 환영하는 입장이 아니다. 해외 기업만 표적으로 하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수도 있다.

EU의 대응을 참고해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은 위법 사안에 대해 국내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을 매기도록 한다. 하지만 빅테크들이 한국 내 매출을 싱가포르 등 외국 법인 매출로 간주하면서 정확한 매출 파악이 어렵다. 반면 EU는 전 세계 매출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이런 논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