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총파업을 시작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이 10일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전삼노는 8일부터 사흘간 1차 파업을 진행한 뒤 15일부터 닷새간 2차 파업을 할 계획이었으나, 이날 돌연 무기한 파업에 들어갔다.

현재 삼성전자에는 총 5개의 노조가 있으나, 전삼노만 파업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전체 직원 약 12만5000명 가운데 전삼노 노조원은 3만1000여 명이며, 반도체를 만드는 DS(반도체 사업부) 소속이 약 9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집회 등 파업 현장에 참여하는 인원은 회사 추산 3000여 명, 노조 추산 6500여 명이다. 전삼노는 노사협의체 합의안(5.1%)보다 높은 5.6% 연봉 인상과 성과급 지급 기준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파업 참여 인원이 적어 실제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에선 신뢰도가 떨어져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미국·일본·대만·유럽 등 전 세계가 치열한 반도체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노조 파업으로 국내 반도체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략 산업인 반도체는 국내 투자와 고용, 생산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상반기 수출 중 가장 높은 비율(20%)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국민 혈세를 투입해 첨단 반도체 부지를 조성하고, 지난해에만 삼성전자에 6조7000억원(나라살림연구소 추정)의 세금 감면 혜택을 제공했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가 인공지능(AI) 반도체에서 고전 중인 것을 감안하면, 노조 파업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업계 관계자는 “평균 연봉 1억2000만원의 노조가 회사와 국가 경제를 볼모로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지난 8일 총파업을 시작한 후 집회 상황을 소셜미디어(SNS)로 생중계하고 있다. 채팅창에 ‘파운드리 클린 라인이 멈췄다’ ‘15라인 품질 사고 발생’ 등의 문구가 뜨자 조합원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전삼노는 “파업의 목표는 생산 차질”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전삼노는 소셜미디어 방송을 통해 “자동화 수준이 낮아 인력 투입이 많은 ‘8인치 라인’에 대해 우선 결근 투쟁을 집중하고, 이후 평택사업장 HBM(고대역폭메모리) 라인 파업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회사 측에 따르면 실제 노조가 주장하는 생산 차질은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지 않다. 회사는 인력 배치 조정 등을 통해 파업 인력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파업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고객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원하는 제품을, 제때 공급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글로벌 고객사들은 이번 파업으로 수율(정상 제품 생산 비율)에 영향을 받고, 납기가 지연되지 않을까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8일 오전 경기도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앞에서 열린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여한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들은 8일부터 사흘간 파업을 벌인 데 이어, 10일 무기한 파업을 선언했다. /연합뉴스

◇연봉 1.2억원 노조의 파업

이번 삼성전자 노조 파업에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파업 명분이나 상황이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직원 평균임금(등기 이사 제외)은 1억2000만원으로 국내 임금 근로자 상위 4%에 해당한다. 올해 초 경영진과 직원 대표 간 공식 창구인 노사협의회에서 합의된 연봉 인상률 5.1%를 거부하고, 5.6%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삼성전자는 영업이익에서 이자 등 자본 비용을 제한 금액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산출하는데, 노조는 비용 제외 전 영업이익으로 기준을 바꾸라고 한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은 올해 상반기 약 8조원의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기본급의 최대 7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한 상태다.

노조는 최근엔 회사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추가로 내걸었다. 노조법상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지급할 수 없는 파업 참여 노조원들의 임금을 보전하라는 것이다. 실제 10일 전삼노 소셜미디어 채널에선 ‘파업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생산도 못 하고 (타결되면 회사가) 보상도 해줘야 한다’ ‘돈 받고 쉬는 것과 같으니 파업에 참여하라’는 글들이 올라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기업들을 보면, 사측이 ‘타결 격려금’ 등의 명목으로 파업 참여자들의 임금을 보전해 주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런 관행이 파업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 만큼, 회사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은 반드시 지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반도체 지원을 위해 부지 제공과 세금 공제 등 대대적 지원을 하고, 인력 육성을 위해 대학 제도까지 바꾸는 것을 고려하면 삼성전자 고액 연봉자의 파업은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힘든 자영업자들이 낸 세금으로 억대 연봉자 파업을 지원한다”는 식의 글들이 파업 기사의 댓글로 올라오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글로벌 ‘칩워’ 중 파업

한국 반도체 산업과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급성장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반도체는 미국(설계)과 대만(생산)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최근 일본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TSMC 생산 시설을 잇따라 유치하며 진입하고 있다. 한국 반도체는 압도적 경쟁력을 보여 온 메모리를 앞세워 ‘반도체 전쟁’에 대응하고 있으니, 조금씩 한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엔비디아와 대만의 TSMC가 급성장하는 동안 삼성전자 반도체는 지난해 약 15조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더구나 삼성전자는 HBM에서 고전하며 최근 반도체 수장을 전격 교체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으로 상반기 좋은 실적을 거뒀지만, 수년 이후의 상황은 장담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