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김성규

인도 구글 앱마켓에서 ‘개인 대출(Personal Loan)’을 검색하면 가장 최상단에 뜨는 앱(App)은 ‘트루밸런스’이다. 누적 다운로드 수만 8000만건에 달한다. 이 앱을 개발한 기업은 한국 핀테크(금융+테크) 스타트업 ‘밸런스히어로’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와 사용 앱, 정기적인 연락 빈도 등 1만2000여 종의 스마트폰 데이터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해 주고, 그에 맞춰 소액을 대출해 주는 서비스다. 인도는 신용 정보가 없어 제대로 된 금융 서비스를 못 누리는 인구가 12억명에 달한다. 자동으로 적절한 신용 평가를 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앱이 인도에서 자리 잡은 이유다. 밸런스히어로가 지난해 거둔 매출은 845억원, 영업이익은 160억원에 달한다. 이 회사 이철원 대표는 “현재 한 달에 600억~700억원의 대출이 이뤄지는데 연체율은 7% 미만으로, 계속 낮아지고 있다”며 “스마트폰 데이터를 활용한 대안 신용 평가 모델 덕분”이라고 말했다.

금융 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을 겨냥한 K핀테크 스타트업이 잇따라 탄생하고 있다. 신용 정보가 아예 없어 신용카드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가 대다수인 인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 같은 아시아 국가에서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들이 IT 기반의 새로운 금융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그래픽=김성규

◇'임팩트 금융’으로 시장 선점

국내 핀테크 스타트업 ‘페이워치’는 말레이시아·필리핀·인도네시아 시장에 적극 뛰어들어 시장을 개척 중이다. 외국계 은행과 카드사 임원을 지낸 김휘준 대표가 2019년 창업했다. 이 회사는 현지 기업들과 손잡고 임직원들을 위한 무이자 급여 선지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일종의 앱 기반 급여 가불 서비스인 셈이다. 급여일 전에 직원이 급여 일부를 페이워치 앱으로 인출하고, 급여일에 기업이 페이워치에 자동 상환하는 시스템이다. 김 대표는 “인도네시아에서는 중고차 대출 이자가 60%대고, 필리핀은 소액 대출 하루 금리만 1~8%여서 사채에 시달리는 직원들이 무단결근하고 도망가는 사례가 많다”며 “기업 입장에선 고용 안정성을 높일 수 있고, 직원들은 평균 0.5달러 수준의 인출 수수료만 내며 무이자로 쉽게 급여를 당겨 쓸 수 있다”고 했다. 페이워치는 현재 한 달 기준 이용자가 5만~6만명, 월 거래액은 100억원 수준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대형 유통점 로터스와 백화점 메트로자야, 통신사 레드원 등 주요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이 개발도상국을 적극 공략하는 이유는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크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노동인구 중 약 80%가 신용카드를 갖고 있지만, 말레이시아에선 그 비율이 10.4%, 필리핀은 10.2%, 인도는 6.2%, 인도네시아는 1.9%에 불과하다. 예금이나 대출, 송금 같은 금융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이도 많다. 모바일 앱과 데이터 분석 등 IT로 이들의 금융 정보를 분석하면, 연체 등의 리스크(위험)는 줄이면서 수익은 얻을 수 있다.

그래픽=김성규

◇해외 송금 서비스 인기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국내 체류 외국인이 계속 늘면서 한국에서 해외 송금 사업을 하는 핀테크 스타트업들도 고속 성장 중이다. 2017년 국내 최초 해외 송금 자격을 취득한 ‘이나인페이’의 주요 고객은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이다. 모바일 앱을 통해 간편하게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지난해에만 매출 477억원, 영업이익 175억원을 기록했다. 외부 투자 없이 지난 6년간 연평균 성장률이 48%에 달한다.

같은 사업을 하는 센트비 역시 여러 건의 소액 송금을 모아 보내는 ‘풀링’ 방식으로 해외 송금 수수료를 은행 대비 90% 이상 낮은 1%대를 제공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센트비의 누적 송금액은 6조원으로 불과 4년 만에 6배 이상으로 불었다.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인구 구조상 해외 송금은 계속 성장할 수밖에 없는 사업”이라며 “실제 저소득 국가 해외 이주 노동자의 본국 송금액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저소득·중간소득 국가 출신 해외 이주 노동자의 본국 송금액은 작년 기준 6470억달러(약 831조4000억원)로 지난 2021년 대비 8% 늘었다.

☞임팩트 금융(Impact Finance)

사회적 가치와 수익을 함께 추구하는 ‘임팩트 투자’와 소액 금융 지원을 의미하는 ‘마이크로 금융’을 합친 말이다. 신용 취약 계층에게 돈을 빌려주고 사회적 기업에 자금을 대는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적정 수익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