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4대 액셀러레이터(스타트업 육성 기관)로 뽑히는 미국의 테크스타스는 최근 전체 인력의 17%를 해고하기로 했다. JP모건이 해오던 8000만달러(약 1100억원) 규모의 투자 지원 프로그램이 올해 말 끝나면 더 이상 연장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JP모건은 작년까지만 해도 투자금 8000만달러가 소진되더라도 지원 프로그램을 연장하기로 했지만, 최근 입장을 바꿨다. 테크업계 관계자는 “투자했던 스타트업의 실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서 JP모건도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스타트업의 돈줄이 말라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한동안 급격하게 성장하던 AI 스타트업에 대한 회의론 때문이다. 빅테크들은 ‘AI 거품론’에도 불구하고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에 천문학적 투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AI 산업 생태계의 풀뿌리인 스타트업에선 이미 투자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8일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글로벌 벤처캐피털(VC)의 투자 건수는 1만6773건, 투자 금액은 1697억달러(약 234조원)로 집계됐다. 2년 전인 2022년 상반기(2만9421건·3351억 달러)와 비교하면 투자 건수와 투자금 모두 반 토막 수준이다. 특히 2년 전 VC 투자가 집중되던 생성형 AI 분야는 여전히 새롭게 창업하는 스타트업은 많지만 투자 유치는 고전하고 있다. 시장 진출 준비 단계에서 유치하는 ‘시리즈 A 투자’에 성공하는 생성형 AI 스타트업 비율은 2022년 3분기 37%에서 올해 1분기 12%로 뚝 떨어졌다.

그래픽=김성규

◇글로벌 VC “투자 확장 중단”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의 큰손인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도 투자를 축소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소프트뱅크의 벤처캐피털 펀드인 비전 펀드는 2분기에 2043억엔(약 2조원)에 달하는 손실을 냈다. 블룸버그는 “소프트뱅크는 비전 펀드 장부에 남아있는 수백 개의 적자 스타트업에 시달리고 있다”며 “손 회장은 최근 AI 산업 투자 확대를 공언했지만 비전 펀드보다는 소프트뱅크 지주사를 통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벤처 투자를 이끌어 온 분야는 AI였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AI 관련 기업이 전체 신규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25%, 2023년 38%, 2024년 45%로 늘었다. 유니콘 둘 중 한 곳은 AI 스타트업인 셈이다.

다만 잠재력을 인정받아 창업 직후 투자를 받은 생성형 AI 스타트업 중 시리즈 A 유치에 성공하는 비율은 2년 전 37%에서 올해 12%까지 떨어졌다. 그만큼 사업에 뛰어드는 스타트업은 많아졌지만 차별화된 모델을 만들어내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래픽=김성규

빅테크와 달리 수익성에 어려움을 겪는 AI 스타트업들은 재정난을 겪고 있다. 누적 투자금이 15억달러에 달하는 인플렉션AI는 사업을 종료하고, 구조 조정을 단행했다. 이 스타트업은 개인용 AI 프로그램을 내놨지만 매출을 거의 올리지 못했다. 오픈AI 대항마로 뽑히는 앤트로픽은 연간 20억달러를 쓰는데, 매출은 2억달러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타임스는 “개발 비용이 수억 달러에 달했던 아이폰과 달리 AI 모델은 개발과 운영에 수십억 달러가 들어간다”고 분석했다.

생성형 AI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아 1억100만달러가량 투자를 받은 스태빌리티AI는 수익 창출에 실패하면서 1억달러 이상의 빚을 졌다. 이 때문에 작년 말 투자자인 코트 매니지먼트가 경영진 사퇴를 압박하면서 회사 매각이 추진됐고, 최근 투자자 측 인사로 경영진이 교체됐다.

그래픽=김성규

◇국내 AI 스타트업 직격탄은 피했지만

국내의 경우 외견상으로는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인다.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올 상반기 AI 분야 벤처 투자액은 27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7% 늘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조금씩 바뀌고 있다. 국내 VC 관계자는 “하반기 들어 금융기관 같은 출자자들이 투자금을 줄이면서 스타트업들이 새로운 투자를 유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특히 수익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기술력이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모델이 없으면 투자가 막히는 상황”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 스타트업들은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한 AI 개발자는 “스타트업들이 만드는 AI 반도체는 작은 AI 모델을 돌릴 때는 잘 작동하다가도 정작 LLM을 돌리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며 “개발비가 떨어지기 전에 기술을 완성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