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백형선

2029년까지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14만6000명의 인력이 부족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작년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가 예상한 인력 부족 규모는 2030년까지 6만7000명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1년 새 반도체 산업 부족 인력 전망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막대한 설비 투자를 하고 있지만, 정작 인력을 구하지 못해 공장을 가동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13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지난 2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올해부터 2029년까지 미국 반도체 산업에서 추가로 필요한 반도체 엔지니어와 기술자는 16만4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기간 새로 반도체 산업에 합류하는 인력은 1만8000명에 불과해 2029년까지 14만6000명이 부족할 것으로 분석했다. FT는 “그동안 반도체 생산 능력을 늘리는 것은 단순히 돈 문제라는 믿음이 컸지만, 현금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며 “반도체 인력 부족 규모는 위험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반도체 인력 부족은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일본의 반도체 기업들도 인력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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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투자 경쟁이 불러온 인력난

반도체 산업 인력난 문제가 갈수록 심화되는 이유는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이 모두 반도체 패권을 잡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이후 가동 예정으로 현재 건설 중인 반도체 생산시설은 전 세계적으로 123곳에 이른다. 중국이 43건, 미국은 25건이다.

미국은 정부와 민간이 2032년까지 2500억달러(약 342조원)를 투자해 16만개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예정이다. 이 인력을 자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수급해야 하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건립에 대규모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은 칩스법 발표 당시 미국은 18조원을 투입해 인재 양성을 통해 반도체 인력 수급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맥킨지는 칩스법에 따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이 계획처럼 완전히 실현되더라도 2029년까지 5만9000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했다.

빌 와이즈먼 맥킨지 수석 파트너는 “근무 환경 문제 등으로 반도체 산업의 노동력 이탈률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TSMC 미국 공장의 경우 긴 노동시간과 업무 강도로 직원들의 불만이 쌓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타임스는 “대만 관리자와 미국 근로자가 문화적으로 충돌하고 있다”며 “한밤중에 긴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직원은 즉각 회사로 돌아와야 하는 등 TSMC 문화에 미국 근로자가 적응하기 어려워 해 퇴사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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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한국도 인재 확보 사활

반도체 인력 확보 문제는 미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은 과거 반도체 강국 위상을 되찾기 위해 2021년 반도체 전략을 수립했다.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도요타, 소니 등 자국 대기업이 합작해 만든 라피더스에도 9조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업계에 따르면, 일본 채용 사이트에 올라온 반도체 엔지니어 구인수는 10년 전보다 14배 이상 늘었다. 소니와 도요타 등이 합작해 만든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 JASM은 올해 초 한국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구인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일본전자정보기술협회는 일본 반도체 주요 기업 8곳에서 앞으로 10년간 4만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인재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국에서도 2031년까지 약 5만6000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는 20일부터 서울대, 포항공대 등 국내 주요 대학을 돌며 ‘테크데이’를 개최해 국내 반도체 관련 분야 석·박사 과정 대학원생 채용에 나선다. 이 행사는 매년 진행하고 있지만, 올해는 예년과 달리 사장이 직접 참석한다. 삼성전자 DS(반도체) 부문도 작년 2월부터 경력채용 지원 기준을 완화해 문턱을 낮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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