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미국 AMD가 자사 인공지능(AI) 사업 생태계를 강화하기 위해 서버 제조 업체 ZT시스템스를 49억달러(약 6조5300억원)에 인수한다고 19일 밝혔다. ZT시스템스는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서버 컴퓨터를 설계, 제조한다. AI 훈련을 위한 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서버 설계 부문을 강화해 시장 점유율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날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인수로 우리 회사는 고객사의 AI 훈련 클러스터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거대 디자인팀을 갖추게 됐다”고 밝혔다. 인수 비용은 75%의 현금과 AMD 주식 일부를 넘기는 방식으로 조달한다. 인수 발표가 나온 후 시장이 호의적으로 반응하며 18일 AMD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4.52% 상승한 155.28달러에 마감했다.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ZT시스템스 인수에 대해 “(AI 서버) 시스템 설계 및 설루션 역량을 추가해 데이터센터 분야를 크게 강화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수 CEO가 지난 6월 대만 컴퓨텍스에서 기조연설을 하는 모습. /AFP 연합뉴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이연주

◇인공지능 생태계 강화가 관건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AMD의 ZT시스템스 인수는 AI 반도체 사업이 단순히 반도체만 관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AMD는 내년 엔비디아의 최신 AI칩인 ‘블랙웰’ 시리즈와 경쟁할 ‘MI350′을 내놓는 등 반도체 성능 면에선 엔비디아를 바짝 따라잡고 있다.

하지만 AI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엔비디아가 80% 이상을 장악하고, AMD는 20% 안팎으로 격차가 크다. 엔비디아 주가가 올 들어 170% 상승하는 사이 AMD 주가는 12% 상승하는 데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AI 반도체의 성능이 아닌 데이터센터 설계, AI 소프트웨어 등 AI 사업 생태계에서 엔비디아가 월등하게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생긴 차이”라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AMD의 ZT시스템스 인수는 엔비디아를 향한 정면 도전으로 풀이된다. 1994년 설립돼 미국 뉴저지주에 본사를 둔 ZT시스템스는 데이터센터에 반도체를 연결하는 서버와 랙(복수의 서버를 저장하는 특수 프레임) 등 인프라를 설계하고 제조하는 서버 전문 업체다. 다만 AMD는 ZT시스템스 인수 후 회사의 연간 매출(약 100억달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제조 부문을 매각하고, 전력·열·네트워킹 및 랙 설계 전문 엔지니어 1000여 명과 설계 부문만 남기겠다고 밝혔다. WSJ는 “이번 거래는 약 50억달러 규모의 고용”이라고 평가했다.

◇AI 칩부터 서버 설계까지 직접 한다

이번 AMD의 ZT시스템스 인수전에서 주목할 점은 인수가 완료되면 바로 서버 제조 부문을 매각한다는 것이다. 제조 시설이 없는 AMD 입장에서는 굳이 낮은 마진 경쟁을 하는 서버 제조 분야에 뛰어들기보다는, 점점 복잡해지는 AI 서버 내부 설계를 효율적으로 해 ‘고객 맞춤형 AI 서버’를 내놓겠다는 전략이다.

AI 가속기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엔비디아도 서버 설계 시장을 넘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연말 출시할 AI 가속기 ‘블랙웰’을 위한 전용 서버를 설계했다. 지금까지는 서버 제조 업체들이 범용 서버를 설계하고, 이 서버에 엔비디아, AMD, 인텔 등의 여러 AI 가속기를 넣어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 가속기 성능이 고도화되면서, AI 가속기의 핵심 칩인 GPU(그래픽 처리 장치) 설계 기업이 최적의 성능을 내기 위해 전용 서버까지 직접 설계하고 나선 것이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는 최대 고객 마이크로소프트(MS)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지난 6월 엔비디아는 MS 측에 블랙웰 설치를 위한 자사 전용 서버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으나 이미 자체 데이터센터용 서버를 갖춘 MS가 이를 거절하면서 몇 주간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테크 업계 관계자는 “AI 가속기 뿐 아니라 서버 시장까지 차지하려는 칩 설계 기업들의 AI 인프라 시장 주도권 경쟁은 점점 격화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