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로 DRAM 20나노 제품 개발을 완료.” 10년 전인 2014년 사업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에 대한 설명은 이렇게 시작한다. 반면 지난 14일 발표한 올해 반기 보고서에선 “상반기 고객사 부품 재고 증가를 감안하면 하반기 수요 성장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수세적 진단을 내리고 있다.

각 기업은 매출·영업이익 등 핵심 지표를 담은 분기·반기·연간(사업) 보고서를 발표한다. 여기에는 주요 사업 부문별 내용과 전망도 담겨 있다.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표하는 이 같은 사업 보고서 중 ‘사업의 내용’ 항목에는 기업들의 자기 진단이 반영돼 있다. 지난 10년간 삼성전자의 사업 보고서에 담긴 반도체 사업 내용을 분석해 본 결과, 제품과 관련해 ‘세계 최초’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은 2020년 사업보고서부터다. 2019년 사업 보고서에서 10나노급 3세대 DRAM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는 내용이 마지막이다. 실제 이 시기부터 내부적으로 세계시장에서 기술적 리더십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2014~2019년 세계 최초 제품 앞세워

통상 사업 보고서의 ‘사업의 내용’ 항목에서 사업 부문별 현황을 설명할 때는 회사의 강점을 부각하는 경향이 많다. 10년 전인 2014년 사업 보고서에서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을 다섯 문장으로 표현했다. “세계 최초로 DRAM 20나노 제품 개발을 완료해 경쟁사 대비 1.5년 이상 앞선 기술 및 원가 경쟁력을 확보했다”로 시작해 “메모리 1위 업체로서 시장을 선도해나가겠다”고 끝마쳤다. 이후 코로나가 확산하기 직전인 2019년까지 첫 문장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제품을 소개하고, 경쟁사보다 얼마나 앞선 기술인지를 설명했다.

2016년에는 “10나노급 DRAM을 세계 최초로 출시해 경쟁사 대비 1년 이상 앞선 경쟁력을 확보했다”며 “10나노급 차별화 제품의 추가 개발 및 차세대 DRAM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등 DRAM 시장의 절대적 위상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2018년에는 세계 최초로 내놓은 ‘10나노급 2세대 DRAM’을, 2019년에는 ‘10나노급 3세대 DRAM’을 앞세웠다.

이 시기 반도체 사업부 성과도 눈에 띄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반도체 업계 최고 자리를 두고 인텔과 경쟁하던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2017년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뺏어왔다. 1980년대 이후 30여 년간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으로 군림하던 인텔을 넘어선 것이다. 2014년 9조4309억원이던 DS부문(반도체) 영업이익은 2018년 46조5164억원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7.2%(2014년)에서 19.4%(2018년)까지 치솟았다.

그래픽=양인성

◇2020년부터 기술적 자신감 하락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운 시장 상황을 먼저 언급했다. 그럼에도 “차세대 DRAM 개발의 핵심 기술을 가장 먼저 확보함으로써 다시 한번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한계를 돌파했다”며 “원가 경쟁력을 제고하고 성능·특성·품질 완성도를 강화하여 시장 리더십을 선도할 예정”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2021~2022년에는 최초로 개발한 기술을 언급하지 않고 “시장 리더십을 공고히 하겠다”고 했는데, 2023년부터는 ‘시장 리더십’이란 단어조차 쓰지 않았다.

DS부문에서 15조원의 적자를 냈던 2023년 사업 보고서는 “2023년 상반기 메모리는 고객사 재고 조정에 따른 메모리 수요 약세가 지속돼 모든 공급사가 생산량 조절을 했다”로 시작해 “시장 회복은 더딘 상황이지만 사업 확대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끝마쳤다.

깜짝 실적을 낸 2분기 실적이 담긴 반기 보고서도 반도체 사업에 대해 “PC 및 모바일은 온디바이스 AI 지원 모델 확대에 따른 탑재량 증가와 계절적 성수기 효과로 수요가 이어질 수 있지만 상반기 고객사 부품 재고 증가를 감안하면 하반기 성장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있다”며 신중하게 진단했다. 그러면서 “AI 관련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며 “HBM3E(5세대 HBM)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일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자신감 있는 단어가 사라진 시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경쟁사와 대비된다. 챗GPT 등장으로 AI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2022년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24.2%였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16.2%로 떨어졌다. 반면 AI 가속기 시장을 독점하는 엔비디아에 HBM을 납품하는 SK하이닉스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2022년 15.3%에서 올해 상반기 32.7%로 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