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김성규

대만 서남부에 위치한 타이난. 이곳은 대만이 새로운 반도체 클러스터(집적 단지)를 조성 중인 곳이다.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TSMC는 타이난에 2020년 공장 2곳을 완공한 데 이어, 이 근방 대도시 가오슝에 2022년부터 2나노미터 공정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추가로 건설 중이다. 기존 2개 공장에 고용한 인력은 9000명에 이른다. 새 공장이 지어지면 9000명의 인력이 추가로 고용될 전망이다. 신규 공장 직원과 주변에 들어설 협력 업체 직원들이 모여들면서 이들을 위한 아파트가 지어지고, 기존 부동산 가격도 오르고 있다. 지난 2분기 타이난 남부에 있는 가오슝의 집값은 전년 동기 대비 13%가 올랐다.

인공지능(AI) 열풍과 반도체 경기가 대만의 경제를 변화시키고 있다. 투자은행 UBS에 따르면 대만에서 자산 1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사람이 2028년에는 지난해보다 47% 더 늘어날 전망이다. 56개 조사국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UBS는 “세계적인 반도체 호황과 AI 산업 활황에 따라 신흥 부자들이 탄생하고, 대만 산업·경제가 발전하면서 다른 나라 백만장자들도 이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만은 2010년대 초반만 해도 경제성장률이 2~3%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1년 6.6%를 기록하며 급등했다. 코로나 시기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TSMC를 비롯한 대만의 IT 산업 매출이 크게 뛴 결과다. 이에 따라 기업들의 임금이 오르고, 국민의 자산이 늘고, 소비도 증가하면서 경제가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FT는 이를 “AI와 반도체가 불러온 부의 확산”이라고 설명했다. 임금이 오른 이들이 투자를 하고 재산을 축적하면서 자산까지 늘고 있다는 것이다.

IMF에 따르면 대만의 1인당 GDP는 매년 늘어 올해 3만4430달러로 한국(3만4160달러)을 앞설 전망이다. 한국은 2003년 1인당 GDP가 처음으로 대만을 앞질렀지만 2020년 들어 반도체와 AI 공급망 주도권을 대만에 내주면서 2022년 다시 추월당했다.

대만 언론은 대만의 반도체 호황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를 2021년 전후로 보고 있다. 코로나로 IT 제품 수요가 늘면서 TSMC의 반도체 매출이 급증하고, 대만의 데이터센터 서버 제조 업체들도 호황을 맞았다. 여기에 미국의 중국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대만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일어났다. 미국 반도체 수입 시장에서 중국산 반도체 점유율이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가운데, 대만의 점유율은 10% 가까이 증가했다. 또 2022년 말 생성형 AI 열풍이 불면서 대만의 서버나 컴퓨팅 관련 업체 수요도 늘어났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TSMC 본사가 있는 신주에 고급 쇼핑몰이 들어섰고, 주말에는 테슬라와 BMW 전시장, 아파트, 단독주택 분양 사무실에 사람들이 몰렸다. 대만 페라리 판매량은 지난 4년 동안 두 배로 늘었다.

반도체가 만들어낸 부의 흐름이 오랫동안 성장이 정체됐던 다른 산업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기술 업계 종사자들이 늘어난 연봉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바람에 부동산 시장이 크게 성장하고 있고 이는 건설이나 서비스 부문 등 내수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만 증권거래소(TSE)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 중 직원 임금이 가파르게 오른 기업으로 건축자재와 건설 회사들이 꼽혔다. 수년 동안 임금이 낮은 수준에서 정체됐던 서비스 부문 일자리에서도 급격한 임금 상승이 일어났다. 현지 직업 중개 업체인 ‘104 잡뱅크’에 따르면 호텔과 레스토랑 업계의 임금은 올 들어 5.5% 올라 10년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바람에 기술 업계 이외 근로자들은 연봉이 올라도 집을 장만하기 어렵다는 문제도 나오고 있다. FT에 따르면 지난 1월 대만 총선에서 젊은이들은 기술 업계 고소득자들이 올려놓은 부동산 가격에 불만을 품고 집권 민진당을 집단으로 이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