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두로프 텔레그램 최고경영자(CEO)가 2017년 3월 프랑스 파리 집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 그는 24일 개인 전용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프랑스 파리 공항으로 입국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지난해 포브스는 두로프가 약 155억달러(약 20조6000억원)의 재산을 가진 것으로 추정했다. /인스타그램

강력한 보안성으로 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메신저 ‘텔레그램’의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파벨 두로프(40)가 24일 프랑스에서 체포됐다. AFP와 로이터통신 등은 두로프가 이날 오후 파리 외곽 르 부르제 공항에서 붙잡혔다고 보도했다. 두로프는 개인 전용기를 타고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출발해 프랑스로 입국하던 중이었다.

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범죄에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AFP는 “프랑스의 ‘미성년자 대상 범죄 단속 사무국(OFMIN)’이 사기, 마약 밀매, 사이버 괴롭힘, 조직 범죄 및 테러 조장 등 혐의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두로프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두로프는 텔레그램에서 각종 범죄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감시하고 차단하기 위한 인력을 충분히 운영하지 않아 사실상 범죄를 방조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AFP는 소식통을 인용해 “초기 수사 결과 프랑스 정부는 두로프를 해당 범죄의 조정 대행자(coordinating agency)로 보고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전했다.

프랑스 정부가 텔레그램에서 이뤄지는 범죄 행위에 대해 두로프의 책임을 어느 정도까지 보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소셜미디어 등에서 유통되는 유해 콘텐츠에 대해 빅테크의 책임을 강화하는 세계 각국의 움직임과 연결돼 있다는 해석이 테크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세계 각국 범죄 온상 텔레그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기업가 두로프는 2013년 자신의 형인 프로그래머 니콜라이 두로프와 함께 텔레그램을 창업했다. 그는 이미 소셜미디어 ‘프콘탁테(VK)’를 2006년 만들면서 ‘러시아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로 불렸다. 2011년 전후 VK가 러시아 내 반정부 시위 확산에 이용되면서, 러시아 정부 기관으로부터 사용자 정보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하지만 그는 이를 거부하고 VK 지분을 매각한 뒤 2014년 러시아를 떠났다. 이때 경험을 통해 암호화된 메신저 앱에 대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로프는 러시아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텔레그램의 영업 본사를 뒀다. 텔레그램은 설립 초기 주로 암호 화폐 커뮤니티로 사용되다 메시지가 암호화돼 비밀 대화가 가능하고 보안에 강력하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사용자가 폭증했다. 텔레그램의 월간활성사용자(MAU)는 2018년 2억명, 2021년 5억명을 돌파한 뒤 현재 약 9억명으로 불어났다. 전 세계 메신저 앱 중에서 4위다.

텔레그램은 한때 러시아·이란·중동·홍콩 등에서 반정부 시위의 소통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가짜 뉴스나 불법 콘텐츠 확산의 주요 경로로 쓰인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 CNN은 “텔레그램은 프라이버시와 보안성을 이유로 각종 불법 메시지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자금 세탁과 마약 거래, 소아성애 콘텐츠 유포 등에 쓰여왔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텔레그램은 범죄에 주로 쓰인다. 2020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n번방’ 사건에서 미성년자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착취물이 유통됐던 경로도 텔레그램이었다. 지금도 텔레그램에서는 마약 거래가 이뤄지는 채널이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에 본사 두고 규제 피해

AFP는 텔레그램이 아랍에미리트에 본사를 두고 있어 최근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는 플랫폼 규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대 20만명의 회원이 모일 수 있게 돼 있는 텔레그램의 ‘채널’이 거짓 정보나 테러, 음란 콘텐츠를 쉽게 유포할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AFP는 “인도 등에서 허위 정보 확산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은 경쟁 서비스인 왓츠앱이 2019년 메시지 관련 규제를 도입한 것과 대비된다”고 했다. 왓츠앱은 최대 20명이 모일 수 있는 그룹 채팅 기능을 5명으로 제한했다.

한편 두로프 체포 소식 이후 일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소유하고 있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유럽의 2030년은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을 좋아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며 비꼬았다. 러시아 블로거들은 세계 각국 프랑스 대사관 앞에서의 항의 시위를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