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현지 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IFA 2024'에서 중국 청소기 브랜드 '드리미'의 로봇 청소기 신제품이 5㎝ 높이 턱을 오르고 있다. 드리미를 비롯해 로보락, 에코백스 등 중국 기업들이 이번 IFA에서 문턱 넘기, 낮은 틈새 파고들기 등 신기술을 탑재한 로봇 청소기를 대거 선보였다. /베를린=윤진호 기자

지난 6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 IFA2024 전시장. 중국 청소기 브랜드 ‘드리미’ 부스에선 이 회사의 새 로봇청소기가 5cm 높이 문턱을 턱턱 넘어다니고 있었다. 몸체에서 뒷다리 역할을 하는 바퀴가 튀어나와 청소기 앞쪽이 들리면서 높은 턱을 타고 넘었다. 그동안 두꺼운 매트나 문지방을 넘지 못한다는 것이 로봇청소기의 큰 약점이었는데 이를 극복한 것이다. 글로벌 로봇청소기 시장 1위 중국 로보락도 4cm 높이 턱을 오르는 로봇청소기 신제품을 이번 IFA에서 공개했다. 올해 나온 삼성전자·LG전자의 로봇 청소기는 최대 오를 수 있는 높이가 2cm다. 중국 브랜드 로봇 청소기는 몸체를 자동으로 낮춰 좁은 가구 밑으로 들어가는 기술력과 두 개의 카메라를 달아 얇은 충전 케이블도 피하는 회피 능력을 뽐냈다.

중국 로봇청소기가 기술력을 앞세워 국내뿐 아니라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 현재도 TV·냉장고·세탁기 등에선 최고 성능의 프리미엄 제품은 한국과 유럽의 가전 업체들이 만든다. 하지만 로봇청소기만큼은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압도적이다. 중국 로봇청소기의 약진은 전 세계 가전 시장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한국과 중국 업체의 향후 입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김성규

◇왜 중국이 강한가

로봇청소기 시장에서 중국 기업 약진의 비결은 연구개발과 경쟁의 힘이다. 중국의 로보락은 삼성과 LG보다 10년 이상 늦게 진출했지만, 현재는 세계 로봇청소기 시장 1위다. 이 회사는 1500명 임직원 중 절반 이상이 연구개발 직군이다. 작년에는 1169억원을 기술 개발에 투자했다. 중국 시장 1위 에코백스도 로봇 기술 개발 인력 1600명을 보유하고 있다. 가전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로봇 청소기 연구진이 수십명 수준인데, 중국은 회사마다 연구개발에 1000명 가까이 투입하고 있다”고 했다.

핵심 기술인 자율 주행과 센서 기술 개발도 중국이 월등히 앞선다. 로봇청소기는 흡입·걸레 등 청소 능력만큼 집안의 지물지형을 파악하고 장애물을 피하는 지도 제작 능력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자율주행과 센서 기술이 필수다. 특허 조사업체 페이턴트 리자르트에 따르면, 자율주행 핵심 부품인 라이다센서 관련 특허 출원 건수는 중국이 2만5957건으로 독보적 1위다. 지난 10년간 중국이 보유한 로봇 관련 유효 특허는 19만건(중국 공업정보화부)이 넘는데, 이는 글로벌 로봇 특허의 3분의 2에 달한다.

무한 경쟁도 중국 로봇청소기 경쟁력의 원천이다. 국내에서는 로보락·에코백스·드리미 등 몇 개 중국 브랜드가 알려졌지만, 중국 시장에서는 200개가 넘는 로봇청소기 브랜드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은 기업과 기술이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 국내 가전업체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은 물걸레 자동 세척 기능 같은 신기술을 냈다가 악취가 난다고 소비자들의 지적을 받으면, 이듬해 신모델에서 온풍 건조 기능을 넣어 이를 극복한다”며 “반면 국내 업체들은 기술적으로 완결된 것만 내놓으려다 보니 경쟁에서 뒤처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무림 고수만 살아남는 시장

중국 기업들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년 로봇청소기 이용자들이 가려울 만한 곳을 긁어주는 ‘킬러 기능’을 탑재한 신제품을 내고 있다. 2021년에는 카펫같이 물청소가 불가한 영역에서는 자동으로 물걸레를 띄워주는 기능(로보락)을 냈고, 2022년에는 ‘올인원 로봇청소기’ 시대가 본격 열렸다. 로봇이 충전을 하는 스테이션(집)에 먼지 비움, 걸레 청소·건조 기능을 모두 넣은 것이다. 여기에 깨끗한 물과 더러운 물을 자동으로 급배수하는 시스템까지 나와 이용자들은 손하나 까딱 안 하고도 로봇청소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둥그런 로봇청소기 특성상 모서리 청소가 약점이었는데, 지난해에는 중국 드리미에서 로봇 팔을 달아 이를 극복했다. 로봇이 모서리에 다다르면 로봇팔이 쑥 하고 나와 모서리를 쓸고 닦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도 올해 본격 올인원 로봇청소기를 내고 중국 기업들이 독차지한 국내 시장 점유율을 찾아오겠다는 전략이다. 두 기업의 수장들도 이번 IFA에서 “로봇청소기는 중국에 뒤처졌다”며 후발주자임을 인정하고 추격 의지를 다졌다. 삼성과 LG는 중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미흡한 보안과 유지 보수 등 관리의 이점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엔 중국 업체들도 국내 중견기업 및 가전 유통망과 제휴해 설치와 애프터서비스를 강화했고, 집안을 들여다본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카메라 대신 다른 센서를 넣는 추세다. 로봇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품들이 확실한 기술 우위가 있거나, 가격 대비 성능을 보여주지 못하면 중국 로봇청소기와 계속 힘든 경쟁을 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