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소 엔지니어, 방사선 치료사, 엘리베이터 설치·수리공. 미국 경제 매체 포브스가 꼽은 미국에서 올해 평균 연봉이 10만달러(약 1억3400만원) 이상인 고소득 블루칼라(생산·기능직 노동자) 직종이다. 대학 교육을 받지 않았어도 직업학교를 수료하고 관련 자격증·면허만 있다면 미국 직장인 평균 연봉(5만3490달러)의 두 배 가까이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유럽에서 이런 고임금의 생산·기능직군에 화이트칼라(사무·전문직)를 선호하던 20~30대 젊은 세대들이 몰리고 있다. 스스로를 고소득 현장직으로서 ‘공구 벨트(Tool Belt)’ 세대라고 부를 정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는 더 많은 배관공이 필요하고, Z세대(1990년대 출생 세대)가 그 수요에 응하고 있다”고 했다.

블루칼라 직종이 젊은 층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배경에는 임금이 있다. 미국 급여 정보 관리업체 ADP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건설 분야 신규 채용자의 중간 임금(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가운데 임금)은 4만8089달러(약 6500만원)로 전문 서비스 분야 신규 채용자의 중간 임금(3만9520달러)보다 1만달러 가까이 높다. 건설 직군 신입이 회계사나 IT 산업 신입보다 더 많이 버는 것이다. ADP는 이런 임금 역전이 4년 전부터 벌어진 현상이라고 밝혔다. 코로나를 계기로 화이트 칼라 직종에선 대규모 구조조정이 발생한 반면, 블루칼라 업종은 수요가 꾸준하다는 해석이다.

발전소와 엘리베이터 관리 외에도 고압 케이블 설치·철거나 배관 정비 등 각종 사회 기반 시설에 대한 유지·보수 업무는 인공지능(AI) 같은 것으로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고령화로 인해 은퇴 숙련공은 계속 증가하고 젊은 인력의 공급은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노동력은 점점 희소해지는 데다, 기술로 대체하기 어려운 육체노동에 대한 보상은 더 좋아지고 있다”며 “블루칼라 노다지가 터졌다(Bonanza)”라고 평가했다.

그래픽=김하경

블루칼라 직군의 인기는 미국 교육 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전문 직업 교육 프로그램 중심의 2년제 전문대(커뮤니티 칼리지)에 등록하는 학생 수가 급증하고 있다. 4년제 대학의 전체 등록률은 감소 추세다. 미국 전국대학생정보연구센터(National Student Clearinghouse)에 따르면, 직업 교육 중심 전문대 등록 학생 수는 지난해 16% 증가했다. 이 데이터를 추적하기 시작한 2018년 이래 최고치다. 같은 기간 건설 관련 학과 학생 수는 23% 늘었고, 난방·환기·공조(HVAC)와 차량 정비 프로그램 등록 학생 수도 7% 증가했다.

세계 최대 검색 포털인 구글에선 ‘블루칼라 일자리’ 키워드 검색량이 최근 3년 사이 3배 이상 늘어나는 등 최근 몇 년간 줄곧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포브스는 “진입 장벽은 낮고 대학 학위를 따기 위해 필요한 학자금 대출까지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블루칼라 직업은 젊은 층 사이에서 좋은 대안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시기를 거치며 빅테크 등 화이트칼라 직군을 중심으로 발생한 대규모 구조조정 역시 블루칼라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을 키운 요인이다. 비영리단체 ‘임플로이 아메리카’는 2022년 3월부터 1년간 미국에서 직장을 잃은 화이트칼라 실업자가 15만명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인공지능(AI)·반도체 등 일부 산업을 제외한 IT 업종에서도 인력 감축은 이어지고 있다.

AI 기술의 발달과 보급으로 사라진 화이트칼라 일자리가 회복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는 지난해 정리 해고를 단행한 뒤 “직원들이 떠난 자리가 앞으로도 채워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 결과, 2020년 4월 지금까지 미국 전역에서 건설·제조·운송 및 창고 산업은 450만개의 일자리를 추가했지만, 전문 서비스 및 정보 부문 일자리는 410만개를 추가하는 데 그쳤다. 엘리스 굴드 미국 경제정책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 수석 경제학자는 “1979년부터 2019년까지 블루칼라 그룹의 실질 임금은 거의 성장하지 않았지만, 지난 4년간은 달랐다”며 “이는 우연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