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양인성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에서 빅테크의 ‘치킨 게임’이 시작됐다. 시장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 경쟁사 죽이기에 나서는 것이다. 오픈AI와 구글은 최근 기업용 AI 이용료를 인하하기 시작했고 중국의 대표적인 AI 기업들은 고성능 모델조차 사실상 무료로 풀고 있다. 기업용 AI 가격이 싸지면서 이 AI를 가져다 맞춤형으로 개발한 각종 AI 서비스와 앱은 넘쳐나고 있다. 기업용 AI는 일반 기업이나 개인이 맞춤용 AI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빅테크들이 제공하는 거대 AI 모델을 말한다. 기업용 AI의 가격이 내려가면 앞으로 일반 사용자들이 일상에서 쓸 수 있는 AI 종류가 더 다양해지고 이 가격 또한 더 싸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오픈AI는 최근 자사의 가장 최신 거대언어모델(LLM)인 GPT-4o(포오)의 가격을 100만 토큰(문장의 최소 단위)당 4달러로 크게 낮췄다. 지난해 5월 출시 당시 7달러였는데 거의 절반으로 낮춘 것이다. 오픈AI가 기업용 AI 가격 인하를 밝힌 직후 구글은 이번엔 자사의 제미나이 1.5 플래시의 기업용 가격을 대폭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제미나이 1.5 플래시는 빠르고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경량화된 AI 모델이다. 기존 0.49달러에서 0.12달러로 낮췄다. 업계 최저가 수준으로 비슷한 성능의 오픈AI 제품 GPT-4o 미니의 절반 정도다. 업계에선 “사실상 승자 독식이 될 AI 시장에서 빅테크의 AI 성능이 어느 정도 상향 평준화되자 이제는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우선 기업용 AI에서 시작된 가격 경쟁은 앞으로 일반 소비자용 AI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픽=양인성

◇치킨 게임 시작되나

그간 생성 AI 업계의 중심은 ‘얼마나 많이 학습했냐’는 학습량과 ‘얼마나 똑똑한지’를 판단하는 성능이었다. 이 기준에 따라 오픈AI를 시작으로 구글, 앤트로픽, 메타 등 다양한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새로운 기술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업들의 기술 수준이 비슷해지자 이제는 그 경쟁이 가격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고객사를 선점하고 관련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춰가고 있다는 것이다.

AI의 세계적 권위자인 앤드루 응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블로그 글에서 “최초 출시 당시 36달러였던 GPT-4는 GPT-4o로 업그레이드되면서 가격은 오히려 4달러까지 떨어졌다”며 “메타의 라마 같은 오픈소스 모델의 출시와 다양한 경쟁 모델의 등장으로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썼다. 실제 오픈AI가 내놓는 GPT의 가격은 작년 3월 36달러에서 작년 4월 14달러, 올해 8월 4달러까지 크게 하락했다. 벤처캐피털 ‘앤드리슨 호로비츠’의 마틴 카사도 분석가는 “과거 인터넷의 네트워크 비용이나 컴퓨팅 비용도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가격 하락을 겪었다”며 “(치킨 게임의 승자가 나올 때까지) AI 역시 사용료가 0에 수렴하는 사이클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AI 업계의 치킨 게임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상반기 중국 업체들은 줄줄이 사실상 공짜로 기업용 AI를 풀기 시작했다. 지난 5월 중국 기업 바이트댄스는 두바오 프로를 내놓으며 “GPT-4보다 99%나 싸다”고 홍보했다. 그러자 이번에 중국 알리바바가 퉁이첸원을 최대 97% 인하하겠다고 밝혔다. 텐센트와 바이두는 아예 경량화 모델을 무료로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사실상 공짜로 AI 모델을 내놓는 출혈 경쟁이 벌어진 것”이라며 “이에 따라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챗봇 등도 하나둘 공짜로 풀렸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스타트업도 울상

문제는 비용이다. LLM 개발 비용과 운영 비용은 여전히 천문학적 수준이다. 이 때문에 AI 승자가 되기 전 수익화는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최근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매출이 20억달러(약 2조6810억원)를 돌파했다고 보도하며 비용은 70억달러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새로운 AI 모델 개발에 상당한 비용이 투입되는 데다가 직원 인건비도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전쟁이 벌어지면 실제 수익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적자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결국 승자 독식이 된 상황에서 가격을 크게 띄울 수 있다”고 봤다. 실제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최근 오픈AI 경영진이 현재 개발 중인 LLM 모델 ‘스트로베리’와 ‘오리온’에 구독료로 월 2000달러(약 270만원)를 매기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