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반도체 제국’으로 불리던 미국의 인텔이 인수합병(M&A)설에 휩싸였다. 최근 실적 부진으로 대규모 감원과 3년 전 재진출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부 분리를 추진하는 가운데, 이번에는 M&A 시장의 매물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20일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미 반도체 기업 퀄컴이 인텔에 매수 제안을 건넸다고 보도했다. 인텔의 시가총액은 20일 기준 931억9100만달러(약 125조원)로, 거래가 성사될 경우 이는 최근 수년간 이뤄진 M&A 중 가장 큰 규모가 될 전망이다. 퀄컴은 스마트폰의 ‘두뇌’인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의 강자다. 인텔을 인수하게 되면 PC용·서버용 반도체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퀄컴의 시총은 인텔의 2배인 1880억달러 규모다.

퀄컴의 인텔 인수설이 불거지면서 두 회사의 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인텔은 1970년대부터 반도체 신기술을 선도하며 연산·처리하는 중앙처리장치(CPU)를 앞세워 PC 시대를 호령했다. 퀄컴은 2000년대 들어 모바일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며 ‘인텔 시대’의 종언을 앞당겼다. 두 회사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제조 부흥’ 기조 아래 손을 잡기도 했다. 퀄컴이 인텔의 최첨단 파운드리 공정에 반도체 제조를 맡기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다. 하지만 퀄컴이 테스트 과정에서 인텔의 생산 품질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지난해 두 회사의 동맹은 없던 일이 됐다.

퀄컴의 인텔 인수가 실제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독점 문제로 세계 각국의 시장 경쟁 당국의 반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2017년 미국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에 나섰을 때 미 당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2021년 엔비디아의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 인수도 미국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WSJ는 “인수를 위해서 퀄컴이 인텔의 일부 자산을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며 “다만 인텔이 지난 50년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아예 없진 않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