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3일(현지시각) 독일 쾰른에서 열린 게임쇼 게임스컴 2024 현장을 찾은 관람객들이 전시관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다. /연합뉴스

“딥러닝으로 게임 제작 시장의 판을 바꾸겠다.” 게임사 크래프톤 산하 개발사 ‘렐루게임즈’가 작년 설립 당시 내놓은 출사표다. 사명 ‘렐루’는 딥러닝 분야에서 활용되는 함수를 뜻하는 말로,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 회사는 인공지능(AI), 딥러닝으로 신작을 내놓는 게 주요 경영 목표다.

렐루게임즈는 지난 5월 신작 ‘마법소녀 루루핑’을 내놨다. 투입된 개발진은 단 3명. 제작 기간은 1개월에 불과했다. 게임에 따라 다르지만 신작을 만드는 데 개발자 수십명이 투입돼,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초단기 제작 게임’이다. 그래픽 작업을 생성형 AI 기술을 통해 1명이 전담하는 등 손이 많이 가는 업무에 걸리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인 게 주효했다.

한국 게임사들이 게임 제작에 AI를 접목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비슷한 유형의 단순 작업을 처리해주는 AI 도구를 자체 개발해 직원들에게 제공하고, 이를 활용해 이미지·음성 등을 빠르게 만들어내는 식이다. 이를 통해 콘텐츠 제작 시간은 기존 대비 수십~100분의 1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게임 신작들이 나오며 소비자의 요구 변화 속도도 빨라진 만큼, 제작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려 AI 접목을 모색하는 것이다. 비용 감축도 AI를 찾는 주요 이유다. ‘검은 사막’으로 유명한 게임사 펄어비스는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며 “개발 측면에서 머신 러닝이나 AI 활용을 점점 넓혀 인건비 부담을 많이 줄이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실적 개선 압박에 시달리는 게임사들이 AI 활용을 기업 홍보에 적극 도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AI로 제작 시간 50분의 1로

엔씨소프트는 AI 기반 창작 도구인 ‘바르코 스튜디오’를 사원들에게 보급해 게임 제작에 활용하고 있다. 바르코 스튜디오는 문구나 음성, 이미지, 그래픽을 AI를 통해 빠르게 만드는 도구다. 가령 게임상에 등장하는 주인공, 인물이 넘어지는 장면을 구현하려면, 예전에는 다양한 몬스터가 쓰러지는 모습을 하나하나씩 배우가 연기해 그래픽으로 만들곤 했다. 미세한 차이를 구현해야 이용자들이 거부감을 덜 느끼기 때문이지만, 이 같은 과정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AI 도구를 통하면 배우의 연기 한 번으로 다양한 그래픽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몬스터의 종류와 성별 등에 기반한 각기 다른 움직임을 한 번에 생성하는 식이다.

엔씨소프트는 직접 AI도 개발 중이다. 최근엔 메타의 거대 언어 모델(LLM) 라마(Llama)에 자체 기술력을 더해 한국어 성능을 끌어올린 모델 ‘라마 바르코 LLM’을 공개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AI를 통해 게임 제작에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품질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엔씨 관계자는 “AI 관련 사업의 향방을 따져 각종 외부 사업 전개도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넥슨은 AI 음성 제작 설루션인 ‘보이스 크리에이터’를 활용해 콘텐츠 제작 시간을 줄였다. AI가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먼저 학습한 후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구현하는 것으로, 매번 성우나 개발자가 음성을 녹음하지 않아도 된다. 소비자들의 요구에 따라 게임 업데이트는 수시로 이뤄지는데, 그때마다 추가되는 음성들을 하나하나 녹음하기엔 게임사 입장에서 부담이다. 이에 자동으로 음성을 만들어 반영하는 것이다. 넥슨 관계자는 “제작 시간은 실제 녹음에 비해 50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中업체, 외주 비용 25%로 줄여”

게임 개발에 생성형 AI를 도입하려는 건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 텐센트 게임즈가 생성형 게임 AI 등 자사 기술력을 홍보하는 등, 중국 게임사들도 AI 도입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이 작년 낸 ‘생성 AI, 게임 산업의 마지막 반등 트리거’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게임 업체들은 오픈소스 AI 등을 활용해 콘텐츠 제작 외주 비용을 4분의 1 수준으로 줄였다. 상대적으로 한국에 비해 인건비가 저렴해 안 그래도 비용 측면에서 우위에 있던 중국 게임사들이 더욱 효율화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게임들의 제작 비용이 더 줄 수 있는 상황에서, 효율화를 위한 AI 도입 흐름은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