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 매출 호조로 지난 1분기 영업 이익 7조4405억원을 기록했다. 역대 1분기 최대 영업 이익이자 시장 전망치(6조5929억원)를 뛰어넘은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 매출 17조6391억원, 영업 이익 7조4405억원을 올렸다고 24일 공시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41.9%, 영업 이익은 157.8% 오른 수치다.

SK하이닉스의 실적은 반도체 경기의 영향을 받지 않고 계속 상승 중이다. 전통적으로 반도체는 1분기가 비수기지만,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 이익은 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한 작년 4분기에 이어 둘째로 높다. 영업 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전 분기 대비 1%포인트 개선된 42%를 기록하며 8분기 연속 좋아졌다. 대만 TSMC의 1분기 영업 이익률 48.5%에 버금간다.

당분간 이런 성장세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SK하이닉스는 올해 HBM 수요가 작년의 2배 이상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SK하이닉스는 “1분기에 계절적 비수기임에도 과거와 확연히 달라진 경쟁력을 입증하는 실적을 달성했다”며 “앞으로 비수기에 진입하더라도 차별화된 실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체질 개선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했다.
◇HBM 앞세워 영업 이익률 42%
미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에 대한 우려 속에서 SK하이닉스의 실적은 주력 제품인 HBM과 첨단 D램, 기업용 대용량 저장 장치(eSSD) 등 고부가가치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견인했다는 분석이다.

특히 SK하이닉스의 HBM은 제품 특성상 1년 전 공급 물량을 고객사와 협의하기 때문에 이번 미국발 관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김우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글로벌 고객들은 협의 중이던 메모리 수요를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관세에 대비해 재고를 미리 확보하는 ‘사재기 수요’가 많았던 것도 아니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D램 출하량이 기존 계획을 크게 넘지 않았다”고 했다. 일부 재고 비축 수요가 있었지만, 하반기 실적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HBM뿐 아니라 고부가가치 메모리도 인공지능(AI) 덕을 톡톡히 봤다. 특히 중국산 저비용·고성능 AI 모델 ‘딥시크 쇼크’로 AI 개발 비용이 저렴해지자, 전 세계적으로 AI 모델 개발 시도가 활발해졌다. 이 때문에 AI 서버용 고성능 D램 수요가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1분기 동안 DDR5 96GB(기가바이트) D램 모듈 수요가 늘었다”고 했다. 수익성 높은 D램 수요가 늘면서 SK하이닉스의 D램 매출(HBM 포함) 비율은 전 분기 74%에서 1분기 80%로 늘었다. 그 결과 SK하이닉스가 1분기 매출액 기준 D램 시장점유율 36%(카운터포인트리서치)로 1위를 차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SK하이닉스는 “고수익 AI 메모리 중심으로 전략을 짜면서, 기술 리더십을 입증한 결과”라고 했다.
각국 테크 기업의 AI 서버 확충이 이어지면서 올해 HBM 수요는 지난해 대비 2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SK하이닉스는 내다봤다. 2분기(4~6월)에는 5세대 HBM(HBM3E) 12단 제품 판매 비율을 절반 이상으로 늘리고, 올해 안에 6세대 HBM(HBM4) 양산 준비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또 AI PC용 고성능 메모리 모듈, eSSD 낸드 등 고부가가치 제품 비율을 빠르게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추격에 고부가가치 D램 사활
SK하이닉스의 수익성 확보에 가장 큰 걸림돌은 중국이다. 누구나 사서 쓸 수 있는 범용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는 산업 특성상 성수기와 비수기 구분이 뚜렷해 경기에 따른 부침이 있다. 여기에 최근 CXMT를 비롯한 중국 메모리 기업들의 구형 범용 D램 생산량 확대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도 위협 요인이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대비 이번 1분기 매출이 소폭 감소했다.
SK하이닉스는 영업 이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말 준공하는 청주 M15X 공장에서 첨단 D램을 중점적으로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대신 구형 D램인 DDR4 생산 비율은 지난해 20% 수준에서 올해는 한 자릿수 수준으로 크게 축소한다.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최근 DDR4 생산을 단계적으로 중단하기로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