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량 ‘0(제로)’라는 목표를 위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는 회사들에 투자하게 돼 기쁘다.”
지난달 17일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는 20억달러(약 2조4180억원) 규모의 ‘기후 서약 펀드’ 투자 대상 기업들을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베이조스 CEO의 첫 투자 대상은 스타트업 5곳. 턴타이드(전기 모터), 카본큐어(콘크리트), 리비안(전기차), 레드우드(배터리 재활용), 파차마(탄소 배출 모니터링) 등이었다. 이 다섯 기업들은 모두 기후테크 스타트업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기후테크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지구온난화의 해법을 연구하는 기술을 말한다. 예컨대 내연기관을 대체하는 전기·수소 모빌리티(운송) 기업,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축산업을 대신할 대체육 기업, 친환경 에너지 기업 등이 대표적인 기후테크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기후테크 스타트업으로 돈 몰린다
전자상거래 기업인 아마존까지 수십억달러를 투자할 정도로 기후테크에 관심이 커진 배경은 코로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다. 코로나로 인간의 이동이 줄자,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감소하고 공기는 깨끗해졌다. 이런 현상이 ‘인간이 노력하면 기후변화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뜻으로도 여겨진 덕분에, 이를 도와 줄 기후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레 더 커지고 있다.
서구권을 중심으로 기후변화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어나며 기후테크 분야엔 매년 더 많은 돈이 몰린다. 컨설팅업체 프라이스워터쿠퍼스(PwC)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테크 분야 투자는 2013년 4억1800만달러(약 4820억원)였는데 지난해 161억달러(18조5500억원)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인공지능 분야 투자 증가율보다 약 3배 높다. 보고서를 쓴 셀렌 헤어베이어 PwC 영국 글로벌 리더는 “기후테크는 2020년대 벤처 투자의 새로운 개척지”라고 했다.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기후변화 해법을 지원하며 돈도 벌겠다는 것이다.
기후테크 스타트업 중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한 분야는 전기차, 공유 전동 킥보드 등을 포함한 모빌리티 기업들이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전체 투자액의 63%를 차지했다. 투자 대상은 주로 미국과 중국 기업이었다. 이 중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한 세계 1위 공유 킥보드 업체 라임(Lime)의 기업 가치는 투자 유치 과정에서 5억1000만달러(약 5877억원)로 매겨졌다. 농식품 분야도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 분야 중 하나다. 대체육의 선두주자 미국 임파서블푸드는 콩 등 식물성 단백질로 고기 맛을 내는 다짐육을 만드는데, 기업 가치가 40억달러(약 4조6500억원)로 추산된다. 비료가 적게 쓰이는 작물을 개발하는 인디고애그리컬처는 올해 5억달러 투자를 추가로 유치했다.
◇킥보드⋅포장재⋅쇼핑몰… 국내서도 싹트는 기후테크
국내 기후테크 분야는 이제 막 싹을 틔우는 단계다. 2014년 삼성전자 사내 벤처로 시작한 에임트는 100% 페트(PET) 소재로 만든 보냉 박스를 생산한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스티로폼 포장재를 대체하는 것이 목표다. 쿠팡·현대백화점 등 유통 기업에 신선식품 포장 박스를 납품한다. 작년 매출액은 50여억원이었다. 에임트의 김효조 홍보팀장은 “스티로폼 단열재의 150% 효율을 내는 제품”이라며 “친환경 포장재 관심이 높아지면서 투자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에임트의 보냉박스는 100% 페트 소재이지만, 현행 규정상 분리수거 시 페트병이 아닌 비닐로 구분해야 버려야 한다”며 규제 문제를 풀어야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가치 소비’(소비할 때 기후변화 등 사회적 문제를 염두에 두는 것)를 타깃으로 한 스타트업도 등장했다. 패신저스는 채식주의·친환경 콘셉트의 제품을 판매하는 쇼핑몰 비보트를 운영하고 있다. 쇼핑몰에선 채식주의자용 떡볶이, 신문지로 만든 연필 등 ‘가치소비’ 상품 100여종을 판매한다. 김채영 패신저스 대표는 Mint 인터뷰에서 “환경과 윤리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밀레니얼 소비자가 타깃”이라며 “일하는 방식도 친환경”이라고 했다. 이 회사 임직원들은 배달 음식을 먹을때도 전원 개인 수저를 사용한다. 사무실 내 스낵바에도 전부 채식주의자용 간식뿐이다.
일부 기업은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적극적으로 알린다. 공유 킥보드 씽씽을 운영하는 피유엠피는 이용자들이 작년 5월부터 자사 킥보드를 이용해 줄어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2805톤에 이른다고 밝혔다(10월 8일 기준). 전형진·· 씽씽 매니저는 “앞으로 킥보드에 미세 먼지 탐지 센서도 부착해 친환경 이동수단임을 강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빌리티 편중, 낮은 수익성은 과제
기후테크가 전세계적으로 관심은 받고 있지만, 모빌리티 분야에 편중돼있고 수익성이 아직 낮다는 점은 풀어야 할 과제다. 각국이 환경 관련 법·제도 개선을 통해 기술 개발 분야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물건을 공유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공유 모빌리티 스타트업들이 큰 타격을 입어 기후테크 분야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예컨대 공유 킥보드 업체 라임은 지난 5월 경영 악화로 전체 직원의 13%를 정리 해고했다. 세계 최대 공유 자전거 업체였던 중국 오포(ofo)는 수익성 악화로 자전거 보증금 20억위안(약 3424억원)을 돌려주지 못한 채 일부 경영진이 야반도주해 논란이 일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밴처캐피털 심사역은 “아직까지 비용 효율 면에서는 기존 산업군이 기후테크 스타트업들의 방식보다 뛰어난 것이 사실”이라며 “의미 있는 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이 산업들이 성장할 때까지, 다소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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