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과학 분야 최고 대학이라 불리는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살아남으려면, 까다로운 고차 방정식과 미·적분, 대수기하학, 벡터 등 어려운 개념을 극복해야만 한다. 캐나다 청년 스콧 영(32)도 MIT의 고통스러운 고난도·고강도 학습 과정을 겪었다. 다른 MIT 학생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MIT 캠퍼스는커녕 매사추세츠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고, 모든 수업은 MIT에서 약 4000㎞ 떨어진 캐나다 밴쿠버 자신의 집 침실에서 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집에서 MIT 컴퓨터공학 4년 과정(33개 수업)을 1년 만에 독파했다. MIT가 ‘MIT 오픈코스웨어(OpenCourseWare)’란 사이트에 이 과정을 모두 무료로 공개해두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은 이를 ‘MIT 챌린지’라고 부르면서 자신의 블로그에 소개했다. 그는 이 독학 과정을 정리해 ‘울트라러닝(Ultralearning·초학습)’이라고 이름 붙였다. 울트라러닝은 초고속·초고강도로, 기술·지식을 완벽하게 학습하는 초고효율 ‘독학 전략’을 뜻한다. 영은 총 4년 과정을 단 1년 만에 해냈고(초고속), 이를 위해 하루 12시간씩 공부했다(초고강도). 역시 공개돼 있는 수업별 기말고사를 통과하기 위해 필요한 것만 익히는(초고효율) 학습을 했다. 그는 지난 23일 Mint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수천달러씩 내고 캐나다 중위권 대학을 다녔을 때보다 MIT 독학으로 훨씬 더 많이 배웠다. 이젠 누구든 원하는 걸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시대"라고 했다.
세상이 여러 변화를 겪는 동안에도 근본적으론 같은 방식이 이어져온 교육 분야에 디지털로 인한 파괴적 변화가 닥쳤다. 한곳에 모여 교사에게 지식을 전수받는 학교의 ‘교육 독점’ 시대는 저무는 중이다. 대신 온라인에 공개된 방대한 교육 프로그램 중에 스스로 ‘업그레이드’하고자 하는 주제를 골라 집중적으로 ‘울트라러닝’에 뛰어들 길이 대폭 넓어졌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원격 수업이 대세가 되고 학교, 특히 비싼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가 확산하면서 교육의 무게중심은 디지털과 원격으로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옮아가고 있다.
이런 전환으로 에드테크(EdTech·교육과 기술의 결합) 산업의 시장 규모도 팽창하고 있다. 2018년 1530억 달러(약 173조원)에서 2025년 3420억 달러(약 388조원)가 돼 2배 이상으로 성장하리라고 미 데이터 연구 기업 홀론IQ는 전망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안 그래도 기존 교육에 대한 신뢰가 금 가고 있었는데, 코로나를 계기로 급격히 무너지는 중”이라고 전했다.
미국의 온라인 교육 스타트업 코세라 제프 매지온갈더 CEO는 지난 16일 발표한 2020년 연례 보고서에 “코로나라는 ‘뉴노멀’에 우리가 적응해가는 사이, 코세라 온라인 수강생은 전례 없는 규모로 폭증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 3월 이후 코세라 신규 가입자는 2100만명으로 353% 늘었고, 수강 신청 건수는 5000만건으로 440%가 증가했다. 심지어 원격 교육을 통째로 코세라에 넘기는 대학도 생겼다. 매지온갈더 CEO는 “단기 코로나 대응책이 고등교육의 장기적인 디지털 전환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말했다.
울트라러닝은 최근 인력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코딩) 분야에서 특히 활발하다. 정규 교육이 따라잡기엔 관련 기술이 워낙 빨리 발전하고, 컴퓨터를 활용해 원격으로 학습하기가 용이하며, 독학으로라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취업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하이테크 시대에 기업이 원하는 정보기술(IT) 인재를 대학이 충분히 생산해내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지니 로메티 IBM 이사회 의장은 최근 포천이 주최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서밋’에서 “IBM이 현재 채용 중인 일자리 43%는 아예 대학을 물어보지도, 졸업장을 보지도 않는다. 테크 산업은 4년제 학위를 보고 채용하는 걸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에서 클라우드 개발자로 일하는 고명우(33)씨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지만 수입이 적고 일정하지 않았는데 온라인으로 코딩을 배우고 개발자로 삶을 바꿨다"고 했다. 코딩 교육 스타트업 코드스테이츠를 통해 5개월 동안 온라인으로 코딩을 공부했고 ‘몸값 높다’는 프로그래머로 변신했다. 과제를 먼저 받아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보고, 막히는 문제가 생기면 온라인 화상 세션 때 선배 개발자에게 물어본다. 지금 코드스테이츠에선 500여 수강생이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코딩을 배우고 있다.
이 회사를 만든 코드스테이츠의 김인기(28) 대표도 ‘코딩 독학자’ 출신이다. 수능 성적에 맞춰 경희대 호텔관광대에 입학했지만, 코딩에 관심이 생겨 학교를 관두고 2년간 온라인으로 코딩을 독학했다. 자신처럼 개발자를 꿈꾸는 사람들을 돕겠단 생각으로 한국에서 창업했다. 연 매출이 50억원쯤 되는 코드스테이츠 수강생 86%는 IT와는 무관한 전공 출신이다. 졸업생은 1000명 가까이 되고, 그중 95%가 취업에 성공했다. 취업하지 못하면 수강료를 안 내도 된다. 유명 개발자 출신인 AI 기업 보이저엑스의 남세동 대표는 “코딩은 원격 비대면 수업에 잘 맞고, 1년만 집중적으로 학습하면 충분히 실무에 투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온라인 교육 서비스인 코세라엔 스탠퍼드대 앤드루 응 교수의 ‘AI 머신러닝’, 예일대 로버트 실러 교수의 ‘재무·위기관리’ 등 세계 최고 대학, 최고 교수가 나와 강의를 한다. 1년 등록금이 1억원에 육박하는 대학 교수의 강의를 대부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영어라는 게 문제지만 듀크대 빅데이터 강의, 미시간대 파이선 강의 등 한국어 자막이 달리는 수업도 느는 중이다. 올해 코로나 사태로 원격 수업을 했다는 대학교수 A씨는 “나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석학의 강의가 널렸는데, 굳이 학생이 내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 회의가 든다. 사실 나조차 온라인으로 미 저명 교수들의 강의를 보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근엔 AI, 증강현실(AR) 같은 첨단 기술도 울트라러너를 돕는다. 에드엑스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MIT 코딩 프로그램은 과제 채점을 소프트웨어가 한다. AI가 학생별 실력을 진단해 수준에 딱 맞는 문제를 추천하고, 틀렸다면 왜 틀렸는지도 설명해주는 수업도 온라인엔 많다. 이주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전 교육부 장관)는 “교사 한 명이 30~40명을 동시에 가르쳐야 하는 학교 수업에선 특화 수업이 불가능했지만, AI라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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