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40대 남성의 높은 사망률은 언론의 단골 소재였다. 40대 남성 사망률은 1990년 1000명당 8.1명 수준이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2배였고 한국과 평균 수명이 비슷한 칠레(5.8명)·폴란드(5.8명)·불가리아(4.8명)보다도 훨씬 높았다. 과로·음주·흡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고도성장기였던 당시엔 야근이 잦았다. 음주와 흡연도 일상이었다. 몸이 견뎌내지 못했다.
다행히 40대 한국 남성 사망률은 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감소했다. 지난해 40대 남성 사망률은 1000명 당 2명 수준으로, 1990년의 25% 수준으로 낮아졌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사망률은 전반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의학·위생이 발달하고 건강한 생활 습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결과다. 그런데 이런 전세계적인 추세와는 정반대로 지난 20년 동안 40대 남성 사망률이 내려가지 않는 거의 유일한 나라가 있다.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40대 백인 남성의 사망률은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지속적으로 낮아졌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대로 멈춰섰다. 2006년엔 한국 남성 사망률과 역전됐고 최근엔 한국의 2배 수준으로 올라서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2배나 되는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믿기 어렵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앵거스 디튼 교수는 아내인 앤 케이스 교수와 함께 이 문제에 주목하였다. 그들의 분석에 따르면 사망 원인은 1위가 약물 중독이었고 폐암과 자살이 뒤를 이었다. 디튼은 이 현상을 ‘절망의 죽음’이라 이름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에게 이 통계를 보여주고 뭔가 큰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흑인 사망률이 낮아졌다는 사실에만 주목하고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 듯했다”고 말했다.
미국 중년 남성의 좌절은 실업과 저임금으로 인한 생활 수준의 하락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세계화와 기술 혁신은 미국의 안정적 일자리를 줄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불평등도 커졌는데 40대 남성은 그 과정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몰락한 공업 지대의 백인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가장 큰 기여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는 낙선했지만 7000만명이 이번에도 트럼프를 찍었다. CNN 등은 ‘트럼프는 사라져도 트럼피즘(트럼프주의)은 살아 남는다’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지난 4년간 미국 정치가 보여준 혼란 그리고 ‘막장 드라마’ 처럼 진행 중인 이번 미 대선 후의 혼돈 뒤엔 40대 미국 백인 남성 사회에서 번지는 ‘절망의 죽음’, 그리고 이를 유발한 경제적 좌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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